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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나가서 수능 보겠다"…의대行 제재 피하려 대탈출 [흔들리는 영재교육]

■ 이공계 인재양성 '빨간불'

졸업생 중 의학계열 진학률 급증

n수생 포함하면 더 늘어날수도

공학·이학자 선발과정 참여 등

현행 선발시스템 개선 지적 속

"흥미 느낄 터전 마련해야" 반론도


가속화하는 ‘의대 쏠림’이 영재·과학고 학생의 이탈을 부추기면서 우리나라 미래산업을 이끌어갈 이공계 인재 양성에 비상등이 켜졌다. 안정적 고수익과 함께 정년에 대한 우려가 없는 의대 등 의약학계열로 진학하려는 학생이 많아지면서 이공계 분야의 성장 잠재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키우는 영재학교의 중도이탈률도 높아지고 있다. 입시 전문가들은 정확한 실태 파악은 물론 선발 시스템과 맞춤형 교육 강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수학·과학 등 이공계 분야 우수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와 달리 영재학교에 의대를 가려는 학생이 많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4일 교육계에 따르면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의학계열 지원 시 졸업을 유예시키는 제도를 2013년 마련했고 일부 학교도 수위는 낮지만 학교장 추천서 미작성 등 자체 방안을 갖췄다. 그럼에도 의대 진학률이 줄지 않자 교육부는 2016년 △고교에서 받은 장학금·지원금 회수 △고교 입학 당시 의대에 안 간다는 서약서 쓰기 등의 방안을 시행하도록 전국 영재고·과학고에 권고하기도 했다.

교육 당국이 각종 조치를 내놓았지만 의대 열풍은 꺾이지 않았다. 종로학원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제외한 7개 영재학교의 의약학계열 진학률은 2019학년도 8.2%에서 2020학년도 8.4%로 늘었고 2021학년도에는 8.8%까지 올라섰다.

문제가 계속되자 전국 8개 영재학교는 2021년 입학 이후 의대나 약대에 진학하려는 학생에게는 대입에 불리한 학교생활기록부를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약학계열 진학 제재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했다. 해당 내용은 2022학년도 입학 전형 모집 요강에 반영됐다.

의대 진학 통계에는 입학 제재가 적용되지 않은 n수생도 포함돼 있는 만큼 실제 제재가 고3 학생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영재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률이 증가하는 시기에 영재·과학고 학생들의 중도탈락률도 급격히 증가한 것은 의대 진학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중도탈락률이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의대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어서일 수 있다”며 “의대에 가는 방법은 제재를 감수하고 수능을 보는 것인데, 굳이 학교 다니면서 수능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이유를 짚었다.



2022학년도부터 제재가 더욱 강해지면서 앞으로 중도탈락률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신입생들의 이탈이 크게 늘고 있는 만큼 중도탈락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행 선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현장에서 들린다.

과학고는 크게 1단계 서류 평가 및 출석 면담, 2단계 소집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영재고는 1단계 서류 평가, 2단계 영재성 평가, 3단계 영재성 다면 평가를 실시한다.

영재성 평가는 과학고 소집 면접과 비슷하며 영재고에만 있는 영재성 다면 평가 역시 중학교 수준을 뛰어넘는 정도의 영재를 뽑는 평가 과정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선발 시스템이 입학 후 교육 프로그램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학생들을 뽑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서울 소재 과학고 교사는 “출석 면담 때 주로 전직 교장단으로 구성된 입학담당관이 아이들을 평가한다”며 “행정 업무를 담당했던 분들이라 아이들의 적성과 재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을 평가할 때 공학자·이학자 등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며 “한국과학창의재단에 있는 인력을 지원받아 선발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선발 시스템은 완성된 인재가 아닌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뽑기 위해 마련됐고 현재 인력 풀로도 충분히 아이들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도탈락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 이 부분에 집중해 지원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 소장도 “광양제철고나 포항제철고 학생들은 방학 때 러시아의 저명한 학자들과 함께 연구만 한다”며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면 아이들이 의대만 선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회통합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수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사회통합 전형으로 영재·과학고에 입학한 일부 학생들의 경우 성적이 안 나와 문과계열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밖에 재수를 통해 의대에 가는 영재·과학고 출신, 이공계 학과에 진학했다가 다시 의대로 가는 인재들이 어느 정도인지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별 영재학교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중도탈락률 증가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중도이탈률 원인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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