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의 시작이었던 지난 1월 21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40대 아들을 둔 60대 어머니는 생애 가장 비극적인 날을 맞이했다. 장기간 약을 복용하지 않은 아들이 환각증상을 호소하며 어머니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것이다. 아들은 경찰조사에서 “어머니가 괴물로 보여 무서웠다”고 말했다.
매년 존속살해 피의자 10명 중 3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어버이날에도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책임이 사실상 가족에게만 전가되고 있는 만큼 살인 등 강력범죄 예방을 위해 보호자 중심이 아닌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존속살해 46건 중 12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피의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의 26.1%에 달하는 수치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존속살해 비율은 2018년 23.2%, 2019년 21.2%로 떨어졌으나 2020년 26.3%, 2021년 28.8%로 증가세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를 막기 위해선 위험성을 조기에 진단할 전문의의 진료와 의료지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폭력학대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의 한 관계자는 “출동해도 정신질환자의 명백한 폭력이 관찰되지 않을 경우 인권 문제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범죄 증후가 발견된다고 해도 이들에게 의료지원을 해줄 국가의 공적 환자이송 인프라 역시 열악하다. 정신응급환자 발생 시 유기적 현장 대응을 위해 24시간 전용 병상 2개를 운영하는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는 전국에 서울시의료원, 인천성모병원, 충남대병원, 울산대병원, 강원대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원광대병원, 제주대병원, 안동병원 9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정신질환 으로 등록한 장애인 수가 10만 4424명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정신질환자를 치료할 시설도 부족하지만 이들을 진료할 정신과 전문의가 열악한 처우와 근무환경 속에 현장을 떠나고 있는 형편“이라며 “강력범죄 예방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 전문의에 대한 처우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률과 제도 역시 현실에 맞지 않는 다는 비판이 많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주기적으로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큰 문제가 없음에도 이들에 대한 퇴원 절차가 허술하고 사후 관리체계도 미비하다. 우리나라는 범죄 위험성이 높음에도 보호자가 퇴원을 원하면 퇴원이 가능하다.
2018년 7월 발생한 경북 영양군 경찰관 사망 사건도 허술한 제도가 낳은 대표적인 참극이다. 피의자는 살인 경력이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였지만 주치의의 만류에도 보호자인 어머니가 병원비 부족을 이유로 퇴원을 원했고 약물치료가 중단된 아들은 강력범죄를 저질렀다. 반면 미국,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퇴원을 판사나 정신건강심판원 등 공신력있는 기관이 전담해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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