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독일 등 해외의 친족상도례 조항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좁게 적용되고 있다. 직계존속·직계비속·배우자 등 실제적인 공동체를 이룬 대상들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에도 형 면제가 아닌 친고죄(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처럼 가정 내 발생한 사건에 대해 국가가 일률적으로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개입의 전제 조건을 피해자의 의사에 두겠다는 취지다. 사실상 한국이 전 세계에서 친족상도례를 가장 폭넓게 인정하고 실행하고 있다.
11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독일은 친족상도례의 효과를 모두 친고죄로 제한하고 있다.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형사소추 여부만 달라질 뿐 국내처럼 형이 면제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에 비해 적용되는 인적대상이 상대적으로 넓다. 직계 친인척·배우자·생활동반자 등 혼인관계에 있지 않더라도 주거 공동체로 인정될 경우 친족상도례의 대상으로 인정한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스위스는 형법에 따라 친족이나 가족구성원에 대한 절도·횡령·배임·사기 등 혐의에 대해 친고죄를 적용하며 오스트리아는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 간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친고죄 적용과 함께 형을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친족상도례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와 같이 형면제를 시행하는 국가도 일부 존재한다. 프랑스의 친족상도례 조항은 강요·공갈·사기·횡령 등의 범죄가 발생할 경우 형사소추를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그 대상을 존속·비속·배우자로 국한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절도·사기·배임·부동산 침탈 등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법 개정을 통해 동거가족이 포함되지 않도록 했다. 직계혈족·동거친족·동거가족의 배우자도 대상이 아니다. 김광현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원은 “일률적으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사실상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에 비해 친족상도례 조항을 가장 넓게 적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 법조계에서는 친족상도례 조항을 형 면제가 아닌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대표변호사는 “친족상도례는 개인의 인권의식·권리의식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를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게 돼 오히려 일부 범죄를 부추길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도 “친족상도례는 과거 우리사회가 게마인샤프트(공동체사회)였을 당시의 문화를 반영한 법 조항으로, 현재 국민의 대부분이 오늘날 적용되기에는 부당하다고 느낄 것”이라며 “친고죄 혹은 반의사불벌죄로 개정할지에 대한 논의는 입법기관의 법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논의 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승 연구원은 반의사불벌죄로의 개정이 사회에 더 적합하다는 입장이다. 가정 내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먼저 개입하고, 구성원이 ‘반대’할 수 있는 반의사불벌죄와는 달리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신고가 필요한 친고죄는 가정 내 불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승 연구원은 “개정 방식에 대한 논의는 법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쪽이든 법을 현실화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조사관은 “법은 사회가 변화하면서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고, 입법자는 변화한 사회를 고려해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과거 ‘친족 내부의 지나치게 사소한 부분까지 국가가 개입한다’는 측면에서 벗어나 ‘친족 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조차 범죄피해로부터의 보호는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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