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뱅크런(Bank run)을 강조하고 있지만, 저는 많은 예금이 걸어서 빠져나가는(walk-away)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공포에 따른 뱅크런이 아니더라도) 예금 금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고객들은 이미 은행에서 예금을 빼내고 있습니다. 이에 지금의 은행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입니다.”
세계적 금융석학인 루이기 진갈레스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최근 미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은행업계의 혼란 사태를 맞아 서울경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은행 실패의 본질과 전망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붕괴 이후 잇따르는 미국 중소 지역 은행들의 실패는 일부 은행의 뱅크런에 따른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고금리가 만들어낸 경제 구조 변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진갈레스 교수는 2014년 미국재무학회(AFA) 학회장을 지내고 현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의 자문위원을 역임하고 있는 금융경제학자다.
진갈레스 교수는 최근 잇따르는 은행 붕괴의 원인에 대해 “단순히 현금이 있느냐하는 유동성의 문제가 아니라 예금을 내어줄 능력이 있느냐하는 지급 능력의 문제”라며 “대차대조표의 한쪽에는 손실이 쌓이고 한쪽에서는 예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인데, 이런 상황은 퍼스트 리퍼블릭 등 붕괴한 은행 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고 강조했다. 고금리 체제가 지속되는 한 실패 은행을 더 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기준금리가 올라 머니마켓펀드(MMF) 예금보다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투자처가 즐비하다 보니 투자자들은 굳이 통장에 돈을 묶어두기 보다 수익성이 더 높은 곳으로 옮기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 예금을 내어주려면 자산을 팔아야 하는데, 현재 보유한 채권이나 모기지 증권의 상당수는 저금리 시절에 확보해 지금은 시가가 당시보다 낮다. 매각한다면 손실을 보고 팔아야하고, 누적된 손실은 은행의 생존과 연결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진갈레스 교수는 “아주 간단한 부분을 짚어보자. 기준금리가 올랐고 이에 은행업계에 6200억 달러에 달하는 미실현 손실을 안게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예금이 계속 빠져나가면 은행이 지불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은행 문제가 해결되는 유일한 상황은 예금주들이 돈을 옮길 만한 대체 투자처가 없어지는 것 뿐”이라며 “아쉽게도 투자처는 더 많아졌고 투자자들은 점점 현명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진갈레스 교수는 “신용경색이 다음 정거장”이라고 했다. 그는 “은행이 예금 상환 요청이 이어질 때 자산을 매각해 손실을 입지 않으려면 신규 대출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나는 신용 경색이 올 여름께 올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강도가 상당히 심각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특히 충격은 중소기업과 중산층에 집중될 것으로 봤다. 대기업의 경우 이미 보유 현금이 넉넉한 경우가 많고, 대출을 하더라도 좋은 이자율로 빌릴 수 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진갈레스 교수는 “미국의 장삼이사들(rank and file)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이들이 지역 은행의 영향을 받는 주된 대상이며 더 이상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부터 투자를 줄이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줄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는 침체다. 그는 “경제가 강하게 둔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은 은행권 부실의 또 다른 뇌관으로 봤다. 그는 “금리가 높아질 수록 연약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질 것이고, 특히 지역은행들이 이 분야에 대출을 많이 늘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며 “이런 상황들이 은행권 부실 위기를 더 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상황은 어쩌다 이렇게 까지 왔을까. 그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두 번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2021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과, 고금리에 따른 은행 실패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갈레스 교수는 특히 기준 금리가 4%를 넘을 경우 시중 은행들이 견디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는 “금리를 올리면 은행이 보유한 자산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점은 연준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SVB 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연준은 금리가 올라도 예금은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과도하게 추정했던 것 같다. 연준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행동을 가정하고 정책을 펼쳤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금리이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신용 경색과 침체의 강도도 결국 금리 수준에 달려있다. 진갈레스 교수는 “연준도 신용 경색을 예상한다면 금리 인상을 중단하거나 심지어 인하하는 것이 경기 침체를 최소화하고 경우에 따라 침체를 피할 수도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며 “하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예측에 실패하면서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확립해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책임은 요구했다. 진갈레스 교수는 “연준은 독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해 실수를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파월 의장의 사퇴를 요청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며 “파월 의장은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댓가를 우리가 치르면서 그의 신뢰 회복을 돕는 상황은 원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연준의 통화정책 외에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주도로 퍼스트리퍼블릭을 JP모건체이스에 매각하기로 한 결정 역시 장기적으로 금융 생태계에 부정적일 것으로 봤다. 대형 은행 집중 현상을 더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진갈레스 교수는 “JP모건은 너무 커서 예금주들에게 예금금리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데, 퍼스트 리퍼블릭을 인수하면서 심지어 더욱 커지게 됐다”며 “이는 예금주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산업이든 특정 기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은행 산업에서는 예금주의 이자가 줄어드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입찰 비용은 결국 금융소비자들이 내는 셈일 수 있다”며 “금융 소비자이 미래 수익을 희생해 은행업계를 구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은행 혼란 외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불안 요인을 묻는 질문에 그는 중국과 대만의 갈등을 꼽았다. 진갈레스 교수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어느 시점에서 대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상상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이는 한국 입장에서도 주요 무역 통로인 중국해의 위협을 가져오는 리스크를 비롯해 중국과 미국, 한국 사이의 관계, 반도체 등 공급망 세계적 혼란 등이 뒤따르는 중요한 이슈”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대만을 둘러싼 중국의 갈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보다 훨씬 더 파괴적일 것”이라며 “그러나 서방인 이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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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현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자문위원 △현 전미경제조사국(NBER) 연구원 △2014 미국재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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