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교원·공공기관 등 공공 부문에서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 10개 중 6개꼴로 불법이거나 상식에 어긋난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민간 기업과 달리 공공기관은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그동안 정부가 공공 부문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공공 부문 노조는 전체 노조의 70%를 차지할 만큼 높은 비중으로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표해왔다.
17일 고용노동부가 올해 3월부터 실시한 공공 부문 단체협약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479개 기관 중 179곳(37.4%)은 단체협약에서 관계 법령을 위반했다. 법 위반은 아니지만 특혜, 인사 침해 등 사회통념상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는 단협을 체결한 기관도 135곳(28.2%)이다. 전체 2곳 중 1곳꼴로 공공 부문 단협이 법과 상식 밖에 있다는 얘기다. 불법이나 무효 단협이 있는 기관의 상급 노조를 보면 민주노총이 103곳, 한국노총이 21곳이다.
주요 불법 사례를 보면 지침과 명령보다 단체협약의 효력을 우선 인정한 경우가 있었다. 구조 조정, 조직 개편을 이유로 정원 축소를 막거나 노사 합의로만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는 단협도 확인됐다. 조례로 정해야 하는 지방공무원의 특별휴가를 단협에서 정한 사례도 법 위반이다. 노조가 합의 형태로 인사에 과도하게 관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단협도 여러 기관에서 체결됐다.
관련 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통념에 어긋나는 불합리한 단협도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예를 들어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더라도 노조 간부의 조합 활동이라면 퇴직이나 해고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단협이 있었다. 노조 전임자의 조합 활동에 대한 불법 또는 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내용의 단협을 유지한 기관도 확인됐다. 노조 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채용을 금지하거나 노조의 채용 거부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단협도 불합리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고용부는 추가로 48개 노조 규약을 확인한 결과 6곳에서 법 위반 소지가 있는 조항을 확인했다. 상급 단체 탈퇴를 방해하거나 위원장의 권한이 과도한 경우였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관련 브리핑을 열고 “공공 부문은 공공성을 중시하고 신분보장, 국민 세금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책임성·도덕성·민주성이 요구된다”며 “수년에 걸쳐 공공 부문 노사 관계에 대한 정부의 지도·감독 역할이 소홀했다”고 실태조사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공공 부문 조사는 노조 밖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노동 개혁을 뒷받침하는 성격도 있다. 고용부의 전국 노조 조직현황에 따르면 공공 부문 노조 조직률은 2018년부터 68~70%대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민간이 9~11%에 불과한 점을 비교하면 공공 부문이 노동계의 목소리를 주도한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고용부는 불법 단협과 노조 규약에 대해 시정명령에 나선다. 단협은 사용자와 노조가 체결하는 만큼 양쪽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또 고용부는 불합리하거나 무효인 단협에 대해서 개선을 권고한다. 이런 협약은 불법이 아닌 만큼 정부가 강제 조치에 나설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측은 조사 결과에 대해 “공공 부문의 단협 효력 우선 인정이 무조건 위법하다는 판단은 노동법 기본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며 “공공기관은 경영평가를 받기 때문에 불합리한 단협들을 상당 부분 시정해왔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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