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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9세기 서구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새로운 창조의 방향을 찾으려 했다. 이들은 구체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인간의 감정을 예술 창작의 주요한 원천으로 삼아 감성적인 인간의 실체와 본능을 탐구하는 데 주력했다. 낭만주의미술에는 이성적인 논리 정연함을 대신해 격정적인 인간의 감정 상태가 표출돼 있는데 특히 스페인 낭만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에서 그러한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다.

고야는 1746년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사라고사의 장식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고야는 밝고 화려한 로코코 화풍으로 태피스트리 밑그림을 그려 화가로서의 성공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스페인 정세가 혼란에 빠지고 곧이어 나폴레옹 군대의 스페인 침략과 이에 맞선 독립 전쟁이 전개되면서 고야의 화풍은 급변하게 된다. 고야의 유화 작품 ‘1808년 5월 3일’에는 이 시기 스페인 사회가 겪었던 격동의 역사가 담겨 있다.



1808년 프랑스 군대가 마드리드로 진입한 후 스페인 왕실은 국외로 추방당했다. 당시 프랑스혁명을 동경하던 스페인 지식인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하지만 1808년 5월에 일어난 시민들의 봉기는 프랑스 군대의 실체를 밝히는 주요한 계기가 됐다. 그해 5월 2일 마드리드 시내에서 발생한 시민들의 저항은 프랑스 군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됐고 약 400명의 시민들이 체포된 다음 날 모두 처형됐다. 이 사건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나폴레옹 군대가 해방군이 아닌 정복자임을 명백히 깨닫게 해줬다.

고야는 이날의 학살 현장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어둠 속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있는 희생자들에게 밝은 빛이 투사되고 있으며 양팔을 들어 올린 남성의 모습은 종교적 순교자를 연상시킨다. 그의 흰옷과 당당한 자세는 순결과 결백을 상징한다. 인간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이 작품은 종국적으로 역사의 현장에서 자유의 고귀한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우리에게도 강한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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