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돈을 갚지 않아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며 자수한 30대 남성이 사실은 28억원이 넘는 자신의 채무를 면해 보려 계획적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부장 권현유)는 피고인 대부업자 최모씨(39)가 강도살인죄 및 살인죄로 지난 10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1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해 9월 29일 지인 김모씨(37)를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유인해 둔기 등으로 때려 숨지게 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최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다음달 7일 검찰에 송치됐다.
최씨는 사건 직후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로부터 27억원의 채무를 변제받지 못해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빌딩 옥상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했다”고 자백해 살인 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검찰은 최씨가 극단 선택을 시도했다는 진술 이후 사무실이 있는 빌딩 폐쇄회로(CC)TV를 분석했다. 빌딩 옥상도 담장이 높고 사람들이 붐벼 극단 선택을 시도하기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전면 재검토에 착수했다. 그 결과 그가 처남을 시켜 사무실 서류를 빼돌리는 수상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후 보완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검찰은 정반대 사실을 포착했다. 최씨는 피해자에게 28억5000만원 상당의 빚을 졌다가 이를 갚지 않고자 고의로 살해한 것이다.
검찰은 최씨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 4곳을 압수수색하고 최씨가 대부업에 사용한 23개 계좌의 거래내역·통화녹음 2000개·5년치 문자 메시지를 분석해 두 사람의 채무관계가 반대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최씨가 증거물인 휴대 전화를 인멸하려고 시도한 사실도 확보했다. 그는 다른 채권자들에게 "나도 김씨로부터 돈을 변제받지 못해 자금이 막혔다"며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피의자는 금전 거래를 대부분 현금으로 해 특별한 증빙자료가 없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최씨가 피해자의 동생에게 높은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속여 차용금 등 명목으로 1억700만원을 편취했다는 사실 또한 추가로 드러났다.
검찰은 최씨의 구속 만기가 임박한 지난해 10월 살인죄로 먼저 기소한 뒤 올해 2월 혐의를 강도살인으로 바꿨다. 형법상 살인죄의 최소 형량은 5년 이상 징역인 반면 강도살인은 최소 무기징역이다.
서울남부지법은 최씨의 강도 살인, 사기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무기징역과 보호관찰명령을 선고했다. 검찰은 추가로 전자장치 부착명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항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 유족의 거주지 관할 검찰청과 연계하여 생계비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피해자 지원절차를 진행했다”며 “항소심에서도 철저히 공소 수행해 강력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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