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일본 경제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성장률이 3개 분기 만에 플러스로 ‘깜짝’ 전환한 데 이어 주가가 버블 경제 이후 최고 수준을 달성했다. 엔데믹과 엔저에 따른 기업 실적 개선, 내수 소비 활성화, 완화정책 지속 전망으로 인한 엔화 약세, 반도체 투자 유치 등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수출이 일본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만큼 해외 국가들의 경제가 함께 개선돼야 일본이 본격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 주가(이하 닛케이지수)는 19일 도쿄 증시에서 장 개장 직후 3만 924.57까지 오른 뒤 3만 808.35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종가는 거품경제 시기인 1990년 8월 이후 약 33년 만의 최고치다. 도쿄 증시 1부 종목을 모두 반영한 토픽스(TOPIX)지수도 전날보다 0.18% 오른 2161.69로 장을 마감하며 1990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로써 닛케이지수와 토픽스는 각각 7거래일, 6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일본 증시의 활황은 기업 실적 호조, 엔화 약세, 기업의 구조 개혁 및 주주 환원 강화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도쿄 증권 프라임시장 상장사 중 1067곳의 2022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실적 예상치를 분석한 결과 순이익이 전년 대비 2% 늘어 3년 연속 최고 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던 비제조업의 순이익이 14%나 증가했다. 신문은 수출 기업들도 현재 1달러당 138엔 안팎인 엔저의 영향으로 올해 견조한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올 초 도쿄증권거래소가 주가순자산배율(PBR) 1배가 채 안 되는 ‘저평가’ 상장기업들에 대응책 마련을 요청한 것도 국내외 주주들의 기대감을 키워 매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5월 8~12일 외국인투자가들이 매수한 일본 주식은 5658억 엔어치에 달한다.
17일 발표된 1분기 성장률도 일본 경제의 회복세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4% 상승해 3개 분기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 지난해 4분기(0.0%)는 물론 예상치(0.2%)를 모두 상회한 ‘깜짝’ 성장이었다. 이 추세가 1년간 이어진다고 가정한 연율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6%에 달했다. 일본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의 영향으로 0.6% 증가하며 성장에 기여했다.
일본 정부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는 점도 경제와 증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닛케이에 따르면 2021년 이후 각국 반도체 기업이 밝힌 대일본 투자 계획 금액은 총 2조 엔을 넘는다. 대표적으로 TSMC·삼성전자·마이크론·아이멕 등이 일본 각지에 반도체 생산 및 연구 거점을 짓고 있거나 건설할 예정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전날 TSMC·삼성전자·IBM·인텔 등 7개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간부를 만나 일본 투자 확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다만 일본의 GDP에서 수출 비중이 20%로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미국·중국·유럽 등의 경제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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