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동시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수의 권력자들이 주형을 빚어낸 유산이다. 질곡의 시간을 지나 온 20세기 유럽에서 권력자들의 존재감은 시대의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권력자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권력자 개인의 속성뿐 아니라 시대의 부름에 대한 그들의 응답이다.
저자인 이언 커쇼는 나치 독일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 영국의 역사학자다. 책 ‘히틀러’를 통해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심도 있는 탐구를 수행해 학계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12명의 유럽 지도자들을 선정하고 당시 시대적 상황과 함께 이들을 분석한다.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레닌으로 시작해 파시스트인 무솔리니와 히틀러, 독재자 스탈린처럼 추축국·동구권 지도자와 함께 처칠·드골·대처 같은 존재 자체가 시대의 아이콘이 된 서방의 지도자도 조명한다.
저자는 권력자의 위대함을 강조하지만 신화를 만들지 않는다.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일도 삼간다. 다만 ‘개성과 권력’을 주제로 설득력 있는 분석을 진행한다. 12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각 장마다 저자는 인물의 ‘개성’을 가장 먼저 살펴본다. 개성은 신체·성격적 특징을 비롯해 권력자의 독특한 이전 삶의 배경 등 그가 권력을 쟁취할 수 있던 요인과 이어진다. 예컨대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을 수 있던 이유는 백마를 타고 로마로 행군하는 ‘두체(이탈리아 파시스트 집권기의 국가 원수)’ 신화를 창출했던 까닭이 크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히틀러를 향한 종속을 청산하지 못해 ‘나약한 독재자’라는 모순적인 행동으로 혼란을 가져왔다. 갈수록 상실되는 그의 리더십은 전쟁을 패배로 이끌었다.
개성을 통해 인물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남긴 유산’을 통해 인물의 행적이 시대를 어떻게 바꿨는지를 서술한다. 특히 히틀러를 다룬 3장에서 저자가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는 무엇보다도 분명한 20세기의 특징이었다. 히틀러는 두 가지 모두의 주저자(主著者)였다”라고 정의하면서도 “그는 현대사가 목격한 가장 근본적인 문명의 몰락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평한 점이 눈에 띈다. 대처에게는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있어서 그녀는 부차적인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저자는 이외에도 여러 지도자를 향해 건조한 시선으로 돋보기를 댄다. 21세기 민주주의의 후퇴 속에서 이 시대의 지도자 또한 시민들의 삶에 장대한 영향을 끼칠 것임을 예견한다. 4만 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