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크론이 5조 원을 들여 일본에서 차세대 D램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동원한 첨단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게 될 이번 투자 결정을 이끈 것은 보조금 2조 원을 선뜻 약속한 일본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다. 일본은 2021년 발표한 ‘반도체·디지털 산업 전략’에 따라 총 2조 엔의 예산을 반도체 거점 정비에 투입해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8일 글로벌 반도체 기업 7곳의 대표들과 만나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측은 “일본의 반도체 전략에 강력히 호응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일본 대학 내 반도체 인재 양성 프로그램 실행 의사를 밝혔다. 한때 글로벌 점유율 50%에서 지금은 6%대까지 추락한 일본 반도체의 부활을 위해 정부가 꺼낸 카드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영국도 반도체 산업 인재 육성과 보조금 지원 등에 약 1조 6000억 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미국·유럽연합(EU)의 대규모 반도체 산업 육성책에 맞서 자국 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다. 지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반도체 시장에서 별 존재감이 없던 영국까지 발 벗고 나설 정도로 경제 안보 측면에서 중요해진 반도체 산업의 위상과 치열한 글로벌 경쟁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올해 들어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최대 25%로 상향하고 300조 원의 민간 투자가 예정된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시동을 거는 등 반도체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미국·대만·EU·일본·중국뿐 아니라 영국·인도 등까지 뛰어든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국가 대항전’이 된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인재 육성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기업 규제 철폐와 보조금을 포함한 전방위 지원책을 마련하고 기업도 보다 과감한 투자로 호응해야 한다. 첨단 인재 육성을 위한 대학 지원과 산학연 협력 시스템 구축도 절실하다. 정부와 정치권·기업·학계가 ‘원팀’이 돼 총력전을 펴야 반도체 대전(大戰)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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