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를 맞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총집결했다. 민주당은 ‘돈 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코인 보유 논란’ 등 연이은 악재로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치며 당내 결집을 시도했다.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23일 오후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 인근 생태문화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함께했다. 추도식 시작에 앞서 여야 의원들이 착석하자 곧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가 노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입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임기를 마친 직후 5년 만에 추도식에 참석한 데 이어 올해도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덕수 현 국무총리와 김진표 국회의장,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도 자리했다.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추도식은 김 의장의 추도사로 시작됐다. 김 의장은 노 전 대통령의 개혁 정신을 회상하며 “정치 개혁의 유업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께서는 지역주의 극복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 지역 구도를 깨는 선거법만 동의해주면 권력의 절반, 내각 구성 권한까지 넘기겠다고 하셨다”며 “그건 정파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노무현다운 충정이었고 절절한 호소였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2007년 4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당시를 떠올리며 “도전하지 않으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한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되새겼다. 그는 “우리는 대통령의 말씀대로 한미 FTA를 전환점으로 삼아 힘차게 도약했다”며 “평화와 공존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민주당은 이날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계기로 쇄신 의지를 담은 메시지를 내며 내부 결집에 힘을 쏟았다. 봉하마을 방문에 앞서 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때가 있다”며 “기득권에 맞아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당당히 앞으로 나아갔던 그(노 전 대통령)의 결기를 기억하자”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겸손과 무한책임이라는 ‘노무현의 유산’을 잃어가고 있다”며 “당을 둘러싼 위기 앞에 겸허했는지 철저히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엄격한 잣대로 ‘자기 개혁’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도부의 이번 행보는 심각한 당의 내홍을 수습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는 당 차원의 혁신 기구가 구성되기도 전에 ‘대의원제 폐지’를 둘러싼 친명 대 비명의 갈등이 재점화된 상태다. 특히 당내 친명 강경파 초선 모임 ‘처럼회’ 소속인 민형배 의원과 원외 인사들로 구성된 ‘민주당혁신행동’은 전날 새 혁신 기구가 대의원제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비명계는 이 대표가 ‘강성 팬덤’과 결별해야 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한편 이날 추도식에 앞서 권 여사는 이 대표에게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무궁화꽃 접시 도자기와 ‘일본 군부의 독도 침탈사’ ‘진보의 미래’ 등 책 두 권을 선물했다. 이 중 노 전 대통령의 미완성 유고작인 ‘진보의 미래’를 선물한 것에 대해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끊임없이 매달린 주제인 국민의 삶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이 담긴 책으로 이 같은 수많은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