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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한 가족

조은





곧 헐릴 집들의

불빛이 흘러나오는 언덕길

한 가족이 올라간다

두 아이가 엄마 손을 나눠 잡았다

공터엔 달맞이꽃을 감은 인동초

문짝 없는 냉장고

터줏대감처럼 앉은 호박

아이들의 책가방을 그러쥔 아빠가 쳐다보는

하늘에서 젖소 무늬 고양이 뛰어내린다



그 옆 베고니아 꽃대가 휘청거린다

점점 곧추서는 길에다

흐릿한 발자국을

씨앗처럼 넣으며 가는 그들의

그림자의 음영이 다르다

재개발을 앞둔 달동네 저녁 무렵이 사진처럼 선명하다. 비탈길 올라가는 젊은 내외와 아이들 모습뿐이랴. 인동초에 감긴 달맞이꽃이며, 빈집 상속 받은 고양이와, 심은 사람과 헤어진 호박넝쿨까지 포착하였다. 곧 사라질 터 무늬들이다. 추억의 장소들은 사라지고, 규격의 공간이 들어설 것이다. 저 가족들의 발자국 씨앗이 움틀 미래는 어디인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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