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을 통해 포탄 수십만 발을 우회 지원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해당 내용이 사실일 경우 그간 살상 무기 지원을 피해 온 정부 입장에 변화가 생긴 셈이다.
이날 WSJ는 “한국이 비밀 협정에 따라 미국으로 포탄을 이전하고 있다”며 “미국은 이를 우크라이나에 보낼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해당 보도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내용도 있다”고 답하며 직접적인 확인을 피했다. 미 국방부 역시 포탄 이송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언제 완료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와 포탄 구매를 두고 협의해온 점은 인정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당국자들은 한국의 우회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해 계획 중인 공세가 효과를 낼 수 있게 되면서 미국이 집속탄 공급 여부에 대한 ‘난처한 결정’을 미룰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집속탄은 불특정 다수를 살상하는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로 꼽힌다. 이에 따라 2010년 오슬로 조약에 서명한 120여개 국에서 사용이 금지됐지만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은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집속탄 공급을 요청했지만 백악관은 국제적 논란이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거부해왔다.
외신들은 이번 포탄 지원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후 줄곧 살상 무기 지원을 주저해온 한국 정부의 입장 변화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앞서 한국과 미국이 지난해 11월 비밀 협정을 맺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이송할 포탄을 미국에 팔기로 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자 한국 당국은 최종 사용자가 미국이라는 조건을 걸고 협의 중에 있으며 전쟁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4월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이후 기류에 변화가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대규모 민간인 공격이나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경우 한국 정부가 인도적·재정적 지원만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언급하며 입장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WSJ는 “지난해 11월 비밀 합의 이후에도 치명적인 지원을 주저하던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기존 입장의) 전환을 뜻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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