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이 운동까지 잘하면 반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운동부가 전교 1등이라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이 정도면 완벽한 ‘사기캐(사기 캐릭터)’가 아닐까. 축구부 생활을 하면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서울대에 입학한 뒤 프로축구 선수의 꿈까지 이룬 K리그2(2부) 경남FC 신인 공격수 유준하(22)의 이야기다.
유준하는 2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1(1부)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FA컵 16강전(경남FC 0 대 3 패)에 선발 출전해 올 시즌 공식전 4번째 경기를 소화했다. 후반 40분 교체될 때까지 85분을 소화했는데 이는 프로 데뷔 후 한 경기 최장 시간 출전이다. 유준하는 “1부 리그 팀을 상대로 첫 경기를 뛰었는데 골 찬스를 놓쳐서 아쉽다”며 “제가 부족한 점과 나아질 부분에 대해 더 느낄 수 있는 경기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10세 때 서울 신정초에서 축구를 시작한 유준하는 어릴 때만 해도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물론 못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강릉중앙고 2학년 때 출전한 2018 금강대기 전국고교축구대회 결승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 프로팀 스카우터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3학년 때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프로팀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유준하가 서울대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고교 3학년 때였다. 유준하에게는 공부가 축구보다 쉬운 일이었다. 축구부 생활을 하면서도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던 그는 “어릴 때부터 축구에만 올인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학업을 병행했는데 공부한 만큼 성적이 오르는 게 신기했다”고 했다. 프로팀 입단이 아니면 무조건 서울대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전념했고 수시로 서울대(사범대 체육교육학)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강릉중앙고가 배출한 40년 만의 서울대생이었다.
서울대생이 됐지만 프로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낮에는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K4리그(4부) 노원 유나이티드에서 뛰며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이어간 그는 이적 시장이 열릴 때마다 입단 테스트에 응시해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결국 지난 시즌 K4리그 27경기에서 9골을 터뜨리며 ‘영플레이어상’을 차지한 뒤 경남FC의 러브콜을 받았다. 테스트도 아닌 ‘바로 계약하자’는 연락이었다.
유준하는 지난달 K리그2 김천 상무와의 5라운드 경기에서는 꿈에 그리던 K리그 무대를 처음 밟았다. 1988년 황보관, 1989년 양익전, 1991년 이현석 이후 32년 만에 프로축구 무대를 밟은 서울대 출신 선수(2017년 부천 이정원은 FA컵 1경기 출전)가 됐다. 데뷔도 못하고 사라지는 신인 선수들이 대다수임을 감안했을 때 꾸준히 기회를 얻고 있는 편이다. 설기현 경남FC 감독은 “번뜩이는 경기력과 문전에서의 센스가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하며 “데뷔전을 치른 뒤 방송 출연 등 미디어에 노출이 자주 되고 있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대 출신 K리거로 이름을 알린 유준하는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에 출연해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유준하는 “제일 유명한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를 얻어서 영광이었다”며 “엄청 긴장했는데 진행자분들이 긴장을 잘 풀어주셔서 재밌게 찍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3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인 그의 최종 목표는 국가대표다. “모든 축구선수가 그런 것처럼 태극마크를 다는 게 꿈”이라는 유준하는 “아직 부족하지만 축구선수로서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언젠가 졸업은 할 생각이지만 당장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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