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가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지는 ‘X데이트’를 불과 1주일 앞두고 백악관과 공화당이 이를 피하기 위해 진행 중인 부채한도 협상이 합의에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현재 31조 4000억 달러로 설정된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2025년까지 2년간 올리는 대신 이 기간에 재정지출을 제한하는 쪽으로 협상 폭을 좁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합의에 이른다 해도 공화당 극우 성향 의원들이 벌써부터 협상 내용에 반발하고 있어 의회 통과 여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25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부채한도 합의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을 비롯한 민주·공화 양당 협상단은 화상 대화를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양당 협상팀이 의회에 제출할 부채한도 및 예산 입법안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으며 일부 세부 사항은 유동적이라고 전했다. 당초 공화당 의원들이 미국 현충일 연휴를 앞두고 이날 저녁 워싱턴DC를 떠나고 바이든 대통령 역시 주말 동안 백악관을 비울 예정이라 협상이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협상이 어느 정도 진척된 셈이다.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합의안은 부채한도를 2년간 올리는 대신 정부 예산안 중 재량지출에서 국방·보훈 부문을 제외한 항목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는 내용이다. 재량지출은 행정부와 의회가 재량권을 가지고 예산을 편성·심사할 수 있는 지출 항목이다. 미 연방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미국 정부지출 6조 2700억 달러 가운데 재량지출은 27%인 1조 7000억 달러였으며 이 중 국방 부문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내년 국방비 증액 수준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요구한 것과 비슷한 3% 선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지원 예산 중 불용액을 환수한다는 데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득자와 기업의 탈세를 단속하기 위해 국세청에 배정한 예산을 지난해 80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 줄이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국세청 예산이 삭감되는 대신 교육·환경 등 다른 분야의 예산은 삭감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로이터통신은 한 소식통을 인용해 “협상 참석자들이 국방비를 포함한 재량지출 총액에는 합의하지만 주택·교육 같은 세부 항목은 의회가 구체적으로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경우 공화당은 일부 연방정부 지출을 줄인 것을, 민주당도 국내 예산사업 대부분이 크게 삭감되지 않도록 보호한 것을 각각 자평할 토대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합의에 도달한다면 하원 표결일은 30일이 유력하다. 문제는 민주·공화 양당 모두 내부 조율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공화당 보수파인 칩 로이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공화당원들은 나쁜 거래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내 극우 계파인 프리덤코커스 소속 의원 35명은 매카시 의장에게 부채한도 협상에서 좀 더 보수적인 요구 사항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민주당에서도 진보파 의원들이 재정지출 일부 삭감과 공익적 복지 프로그램 수급 요건 강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이 언론에서 재정지출 삭감의 위험성을 적극 알리지 않아 협상에서 손해를 본다는 불만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부채한도 상향과 정부지출 관련 합의안에 대해 “디폴트를 피한다 해도 정부지출에 상한을 둬야 미국을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게 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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