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에 다음 달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 기간에 국방장관회담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중국이 거절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고 있는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 겸 국무위원을 대상에서 해제하는 문제가 표면적 이유다.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주요 관리들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백악관의 노력이 이번 일로 차질을 빚게 됐다.
미 국방부는 이달 초 중국 측에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리 부장 간 회담을 제안했으나 전날 밤 최종적으로 거절당했다고 이날 성명에서 밝혔다. WSJ는 오스틴 장관이 리 부장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는 등 미국이 지난 몇 주간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어조도 이례적으로 무뚝뚝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성명에서 “워싱턴과 베이징 간 군사적 연락 채널을 열어놓는 것이 분쟁 방지를 위해 중요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회담을 거부한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리 부장이 미국 정부 제재 대상이라는 점이 걸림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중앙군사위원회 장비발전부장으로 재직하며 러시아 전투기를 구매해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중국 정부는 리 부장에 대한 제재 해제를 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태도를 바꾸고, 성의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양국 군(軍) 대화가 난항을 겪는 원인을 미국 측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은 중국의 주권·안보와 이익·우려를 확실히 존중하고, 대화와 소통을 위해 필요한 분위기와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 관계는 2월 미국의 중국 ‘정찰풍선’ 격추 이후 악화일로다. 다만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최근 워싱턴DC에서 만나는 등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잭 쿠퍼 미국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WSJ에 “중국인은 경제 문제를 다루는 공직자를 상대할 때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안보 관련 인사보다 우선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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