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부터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 월대 공간을 활용해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흔적이 발견됐다. 월대 복원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지 주목된다.
문화재청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는 광화문 월대 유적 하부를 조사한 결과, 조선말 경복궁 중건 시기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유구를 일부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광화문 월대가 조선말 고종때인 1866년에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재 도로체계를 훼손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원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번 조사 결과, 어도 터의 서측에서는 사각형 모양의 석재가 확인됐다. 이 석재는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14∼16세기에 형성된 문화 양상을 알려 주는 지층 위쪽에 있었다. 네모난 석재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크고 작은 돌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석재 가운데에는 직경 6㎝의 철제 고정쇠가 박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런 형태는 궁중 행사에서 햇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는 차일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와 유사하다”며 “경복궁 근정전이나 종묘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쪽에 이어지는 돌은 약 85㎝ 너비로 남아 있었는데, 어도 터의 동쪽에서도 비슷한 유구가 확인됐다. 우리나라 궁궐 정문의 월대는 조선 후기에 창안된 구조물이다. 현존하는 창덕궁의 돈화문 월대도 조선 후기에 만든 것이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탄 후 빈터만 남아있다가 고종 때 비로소 중건이 됐다.
월대가 조선 후기에 나왔지만 조선 전기에도 월대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그간 세종실록, 중종실록 등 조선왕조실록에는 광화문 앞 공간을 활용해왔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었으나, 발굴조사를 거쳐 물적 증거를 찾은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에는 1866년 3월 3일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는 내용이 있으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해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올해 10월까지 광화문 월대 복원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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