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곧 제출하기로 했다. 경제 단체가 지식재산권 범죄의 양형 기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경련의 의견서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어떤 범죄의 양형 기준을 심사대에 올려 수정에 나설지를 결정하는 데 참고 자료로 쓰인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12일 전체회의를 열고 향후 2년간의 심의 계획과 안건을 확정할 방침이다. 전경련이 기술 유출 범죄의 형량 상향을 호소하는 것은 현재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낙오할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적발된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범죄는 93건에 달했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이 입은 피해액은 2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33건이 반도체·2차전지 등 국가 핵심 전략산업 관련 기술이었다. 지난달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자료를 해외로 유출한 엔지니어가 적발되는 등 우리 전략산업의 기술이 해외로 넘어가는 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술을 해외로 빼돌린 범죄에 대한 처벌은 턱없이 낮다. 2017~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81건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것은 단 5건에 불과한 반면 집행유예(32건), 벌금 등 재산형(7건)이 절반 가까이 됐다. 실형을 선고한 경우에도 법원이 내린 최고형은 6년에 불과했다. 법원의 양형 기준에 기술 유출 범죄 억제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혁신을 짓밟고 국가 안보를 흔드는 매국적 범죄행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발명의 날’ 축사를 통해 “기술 유출 같은 침해 행위에 대해 강력한 법 집행으로 창의와 혁신의 성과물을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법원도 기술 유출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할 수준으로 양형 기준을 강화해 우리 기업들이 혁신을 통해 개발한 기술이 도둑맞는 일이 없도록 도와야 한다. 국회도 산업 기술 해외 유출에 대한 형량을 높이기 위해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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