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현지시간) 저녁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인근의 대형 쇼핑몰 스카이라인 플라자에 입점한 디엠(DM) 매장. '독일 여행 필수코스'라는 별명답게 매장 입구부터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인파를 뚫고 지인들에게 선물할 발포비타민 진열 코너에 들어서니 한국인 관광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바구니에는 발포비타민, 오메가-3, 마그네슘 등 각종 건강기능식품과 멜라토닌, 소화제 같은 의약품들이 담겨 있다. 독일 방문이 처음이라는 박모 씨(32)는 "지인들의 선물을 구매하려고 들렀는데 비타민 등 영양제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도 한국보다 훨씬 싸서 놀랐다"며 "멜라토닌도 처방 없이 구매가 가능해 여행 온 김에 사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의약품 구매 환경은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독일은 처방약과 약국 판매 비처방의약품 외에 일반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판매의약품 목록을 별도로 갖고 있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 국가들은 당초 약국 개설부터 소유, 운영 등 지역약국에 대한 규제가 강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규제 완화가 이뤄졌다. 물론 슈퍼마켓, 식료품가게 등 약국 이외 장소의 일반의약품 판매 허용 여부와 허용 범위는 유럽 지역에서도 나라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영국 독일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판매 가능한 의약품 목록을 운영 중이지만 약국 이외 장소에서 일반의약품 판매를 허용한지 훨씬 오래 되었다. 약국 외에서 일반의약품 판매를 허용하는 대신 판매처 승인, 판매자 교육, 판매 방법 규제 등 판매와 관련된 여러 규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약사법에서는 의약품을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구분한다. 2012년 5월 약사법이 개정되며 편의점 등 약국이 아닌 장소에서도 안전상비의약품(안전상비약) 판매가 가능해졌지만, 일반의약품 중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인정된 일부 품목을 상비약으로 지정하는 구조다. 그나마도 10년째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4개 질환군 13개 품목으로 고정되어 있다.
양배추 유래 성분을 다량 함유해 소화성 궤양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카베진'부터 '동전파스', '오타이산 소화제' 등 여행객들 사이에서 독일 못지 않게 의약품 쇼핑천국으로 통하는 일본은 편의점, 마트 등 일반 소매점에서 살 수 있는 의약품 종류가 2000개 수준이다. 크게 처방의약품과 처방은 필요없지만 약사와 대면해야 구매 가능한 요지도 의약품, 일반용 의약품으로 나뉘는데, 일반의약품은 성분, 부작용 등에 따라 다시 1류~3류로 구분한다. 2류와 3류 약에 대해 일반 소매점 판매를 허용하는 대신 '상담응대체제 정비' 등 안전관리체계와 '등록판매자제도'를 신설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의약품 분류를 좀더 세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3개 품목으로 제한된 편의점 안전상비약 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약국의 독점권을 벗어난 상비약이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가격인하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공개한 '편의점 상비약 관련 대국민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편의점 상비약 구입 경험이 있는 715명 중 62.1%가 '품목 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성인·소아용 해열진통제와 감기약 품목 등을 추가하고 지사제, 화상치료제, 제산제로 확대해야 한다는 수요가 확인됐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안전성 문제 때문에 상비약 품목을 확대하지 않고 정책 추진을 미룬다면 소극적 행정의 대표 사례가 될 것"이라며 "소비자가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안전상비약을 올바르게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헬스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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