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노동계 대표로 유일하게 참여해온 한국노총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경사노위 앞날에 관심이 집중된다. 여당 일각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의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경사노위 전면 재편론’이 나오는 상황이다.
11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국노총은 지난달 말 전남 광양에서 벌어진 한국노총 산하 최대 산별 조직인 금속노련 집행부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에 문제 제기를 하며 지난 7일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보이콧은 지난달 말 경찰의 산하 노조원 간부 2명에 대한 강제 연행이 ‘방아쇠’가 됐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번 보이콧은 시기 문제였다는 시각도 짙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에 대해 강하게 반발해왔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노동 개혁을 ‘노동 개악’으로 규정하고 올해 2월 민주노총과 연대 투쟁을 결정했다. 양대 노총은 노동조합 회계 투명화 대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도심 집회 대응 등 곳곳에서 정부와 부딪쳤다. 급기야 한국노총은 올해 5월 7년 만에 노동절 서울 도심 집회를 재개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노사정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1999년부터 경사노위(당시 노사정위)에 불참하고 있고, 한국노총은 불참·탈퇴와 복귀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1월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했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사정위가 경사노위로 바뀌면서 복귀했다.
한국노총이 다시 경사노위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불참 선언 하루 뒤인 지난 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순히 사과하고 (구속된 금속노련 사무처장을) 석방하고 이런 것을 복귀 조건으로 삼지 않겠다"라며 "근본적으로 윤 대통령이 노동자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 개혁이 발목을 잡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는 분윅이지만, 오히려 정부가 한국노총의 보이콧을 계기로 양대 노총 없이 ‘일방향 개혁’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도 있다. 노동 개혁은 양대 노총으로 대표 되는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낮추고 비노조 근로자의 권익을 높이는 게 목표기 때문이다.
여당 일각에서는 경사노위 전면 재편론까지 나오는 모습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8일 CBS 라디오에서 "이참에 경사노위를 재편했으면 좋겠다"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점 구조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사노위는 18명으로 이뤄진다. 위원장과 상임위원 각 1명,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 5명, 사용자를 대표하는 위원 5명, 정부를 대표하는 위원 2명,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4명이다. 민주노총 불참으로 실제로는 17명으로 운영돼왔다.
경사노위법에 따르면 전국적 규모의 총연합단체인 노동단체 대표자, 그리고 전국적 규모의 총연합단체인 노동단체의 추천을 받아 위원장이 제청한 사람이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으로 위촉된다. 여기서 '전국적 규모의 총연합단체인 노동단체'는 사실상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의미한다.
재편론을 이야기하는 측에서는 임금 근로자 가운데 양대 노총 소속 비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처럼 양대 노총(사실상 한국노총)이 노동계를 대표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이 14.2%(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근거인데, 14.2%는 우리나라에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임금 근로자 2058만6000명 중에서 노조 조합원(293만3000명)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293만3000명 중에서 한국노총 소속은 123만8000명(42.2%), 민주노총 소속은 121만3000명(41.3%)이다.
여당 지도부는 경사노위 재편론과 관련해 "아직은 당내에서 공식 논의된 바 없는 사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번 강경 진압 이전에 이미 여당에서 경사노위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월 청년,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경사노위 근로자 대표 위원으로 위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의 노동개혁에는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만큼,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복귀가 늦어지고 노동 개혁에도 진전이 없을수록 경사노위 재편론에는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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