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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아늑한 내집처럼…주변과 소통하는 '황혼의 공간' [건축과도시]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

기존 요양시설 단절된 이미지 벗어나

박공지붕·베이지 벽돌로 친근감 살려

내부엔 중정·선큰 배치로 개방감 확보

건물 옥상엔 마당 조성해 텃밭 운영도

인근주민 활용 가능한 공유공간 마련

입주자와 연결로 부정적 시선 걷어내

지역민 자발적 서포터스 모임도 생겨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정동욱 작가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인해 ‘웰에이징(Well-Aging)’은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로 자리 잡았다. 잘 먹고 잘 사는 ‘웰빙(Well-Being)’을 넘어 노년기 행복한 여생을 보내기 위한 고민이 커지면서다. 건축계도 다르지 않다. 일상 대부분을 보내는 주거 공간의 위치나 구성·배치 등 건축적 요소에 따라 삶의 질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노인요양시설인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 끝에 2021년 문을 열었다. 도심형 요양시설을 내세운 만큼 위치부터 남다르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끝자락 주거지에 들어선 이곳은 거주 노인과 지역사회의 ‘연결’을 고민했다. 일반적으로 도심과 동떨어진 외곽 지역에 지어지며 ‘단절’의 이미지를 갖는 기존 요양시설과 차별점을 뒀다. 요양시설, 나아가 그 안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도시 속 다양한 구성원들과 어우러지도록 계획한 것이다.



건물 외관을 보면 이 같은 설계자의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서초빌리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치 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주변에 위치한 저층 주택들과 조화를 이룬다. 집을 생각하면 쉽게 그려지는 ‘ㅅ’자 형태의 박공 지붕은 지역민들에게 친근함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의도했다. 이에 더해 베이지톤의 벽돌을 쌓아올린 외부는 기존 요양시설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따스함까지 자아낸다.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 내부 공용 거실 전경. 사진=정동욱 작가


서초빌리지는 입주자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활발한 교류를 끌어내기 위한 ‘유닛 케어’ 시스템을 적용했다. 유닛 케어란 구성 단위를 의미하는 ‘유닛’과 돌보다, 보살피다 등의 뜻을 가진 ‘케어’가 결합된 합성어다. 1~2인실인 각 유닛은 거실을 가운데 두고 둘러싼 형태로 설계했는데, 거주 중인 개인이 자신만의 생활 공간을 가지며 거실에서는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유닛별로는 전담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등이 배치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초빌리지를 설계한 이정승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상무는 “거실에는 병원을 떠올리게 하는 너스스테이션 대신 밥 짓는 냄새가 나는 주방과 소파 등을 두고 있어 일반 가정집과 다르지 않은 형태”라며 “이러한 공간에서 입주자들이 스스로 배회하고 돌봄을 받으며 격리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뚫린 중정의 모습. 사진=정동욱 작가




고령층을 배려한 세심함은 곳곳에서 묻어난다. 각 방의 창문은 세상과 소통하는 ‘제2의 눈’으로 보고 최대한 넓게 확보하면서도 안전 문제를 놓치지 않았다. 외부를 볼 수 있는 영역은 최대화하는 대신 환기를 위한 오픈 구간은 창의 양쪽으로 최소화해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차단한 것이다. 이 밖에도 건물 한 가운데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뻥 뚫린 중정은 실내 위주의 생활을 하는 입주자들에게 개방감을 선사한다. 아울러 이곳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등 직원들이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입주자들에게 최상의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자연 채광과 환기가 가능한 직원 식당을 별도로 배치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은 대지 여건은 설계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도심 속에 위치하는 입지 특성상 외곽 지역의 일반 요양시설과 비교해 넓은 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초빌리지는 ‘선큰’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지하층 외부의 일부 공간을 파내어 지상층과 다를 바 없는 채광과 환기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지하 2층까지 위치한 기다란 형태의 선큰은 입주자들을 위한 작은 정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지하층에 있는 재활치료실이나 프로그램실 등을 답답한 느낌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 지하층에 위치한 선큰의 모습. 사진=정동욱 작가


건물 옥상은 가정집 마당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입주자 중 일부는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로 외부 활동이 제한적인데 이곳 옥상에서는 충분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입주자 자신만의 텃밭을 가꾸는 치유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어울릴 수 있는 공간 계획도 빠뜨리지 않았다. 서초빌리지 지하 1층에는 인근 주민들도 쓸 수 있는 공유 공간을 마련했다. 카페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이곳은 예약을 통해 무료로 동아리 활동 등의 목적으로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지역민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입주자와의 연결로 이어지도록 계획한 것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 전경. 사진=정동욱 작가


서초빌리지의 이러한 시도들은 요양시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에 변화를 이끌어낸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과거 이곳에 요양시설을 건립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인근 거주민들이 반발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요양시설이 들어설 경우 지역 부동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서초빌리지 운영 3년 차인 현재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서초빌리지를 홍보하고 지지하는 ‘서포터즈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상무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요양시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편한 시선은 하루 아침에 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많은 사업자들이 요양시설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과감하게 시도하고 각 지역에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긍정적인 변화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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