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7일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중단을 선언하고 탈퇴는 위원장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탈퇴 여부와 관계없이 파행을 거듭해온 노사정 논의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국노총은 대표적인 근로자 단체로 오랫동안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 일해왔다. 근로자의 날도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노총의 창립일인 3월 10일을 기념해 정해졌다. 1987년 이후 노조 활동이 정치 운동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법의 날’이 ‘근로자의 날’로 슬그머니 바뀐 것도 정치적 노동 운동의 승리였다. 강성 귀족 노조가 등장하고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강화됐으며, 노사 관계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투쟁 일변도의 노사 관계는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이기도 했다. 1999년 5월 24일부터 시행된 ‘노사정위원회의설치및운영등에관한법률’은 제정 목적이 노사정 논의 체제를 통해 산업 평화를 도모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이러한 입법 목적이 사라지고 법 자체가 정치적으로 바뀌었다. 2018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명칭도 바뀌고 노사정 논의 체제가 사회 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이라는 월권적 논의 체제로 바뀌었다. 일부 노조가 조직적으로 인원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 세력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 체제의 변화는 공론의 장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2018년의 법 개정으로 노조가 행정·입법·사법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됨으로써 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거버넌스가 무너졌다.
새 정부가 국민적 요구를 수용해 일부 노조원의 폭력적 불법행위를 단죄하고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지만 기본적인 민주적 질서도 지키지 않고 저항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흉기를 들고 경찰을 폭행하는 것은 뿌리 깊은 노동계의 특권 의식을 확인해주는 일로 국민의 공분을 면하기 어렵다.
노사정 논의 체제를 국민 통합과 연계하는 사고의 틀은 반민주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선택으로 구성되며 삼권이 분립해 그 권력이 통제된다. 이러한 권력 통제의 틀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다. 특정 세력이 입법·사법·행정 분야에서 권력 네트워크(deep state)를 형성하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다. 노동 권력이 노동당 중심의 국가 운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경사노위 활동은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노동과 자본의 대립적 시각으로 분열시키고 업종별·계층별로 사분오열되게 만든다. 노사정 논의 체제는 이미 정치력을 확보한 이해 집단에 특권을 부여해 합리적 토론의 장을 붕괴시킨다.
문재인 정권에서 노사정 논의 체제가 가장 큰 피해를 발생시킨 것 중 하나가 최저임금 인상이다.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임금이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 정신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도 노사정 논의 체제다. 최저임금은 그 영향률이 25%까지 커지는 등 국민의 임금을 결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자는 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다. 최저임금이 현재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 수준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근로자에 대한 모욕이고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일이다. 노사정 논의 체제가 산업을 고사시키고 사회 전 분야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사정 논의 체제로 국민연금도 멍들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전문성도 없는 사람들이 기금을 근로자 복지를 위해 써야 한다고 하거나 기업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금을 이용해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헌법 126조 위반이다. 노사정 논의 체제가 헌법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
노사정 논의 체제라는 허울을 쓰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탄소중립위원회·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 등 사회 전 분야가 전문가는 배제되고 운동 세력의 놀이터가 됐다. 노사정 논의 체제는 민주적 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다. 노사 관계의 평화를 위해 들여온 제도가 국정을 농단해서는 곤란하다.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해 법과 원칙을 세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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