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후원하는 LIV골프가 미국프로골프투어인 PGA투어를 사실상 인수했다. 놀랄만한 소식은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수 개월, 혹은 수 년 동안, 이와 유사한 충격적인 발표가 쏟아져 나올 테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다. 페르시아만 연안국들, 그중에서도 특히 사우디의 눈부신 비상이 중동지역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강력한 파장은 중동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 번져나갈 것이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인구 대국이 어딜까. 정답은 연 8.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사우디다.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UAE) 역시 강력한 성장세를 보였다.
페르시아 연안국의 경제 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여전히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모스크바는 원유와 천연가스 시장에서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주요 산유국인 이란과 베네수엘라 역시 서방국들의 제재로 손발이 묶인데다 원유 기반시설마저 노후화한 상태다. 미국은 상당량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지만 여전히 에너지원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결국 안정적인 원유와 가스 공급을 위해 전 세계가 한 줌 남짓한 페르시아만 산유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같은 상황이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10년간 이어진다면 걸프국들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게 된다. 실제로 페르시아만 4대 산유국의 국부펀드는 이미 3조 달러의 자산을 축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2년 사이에 42%의 자산증가를 기록한 셈이다.
이에 따른 경제적 결과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우디는 오일머니로 프로골프사업을 매입했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왕국은 1월 포뮬라1 레이싱 프랜차이즈를 200억 달러에 매입하려 시도했다. 세계 최고의 축구스타로 꼽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2억 달러의 연봉을 받고 사우디 프로팀으로 이적했다. 사우디는 온라인게임산업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명문 스포츠팀, 유럽의 고급호텔과 명품 브랜드 뒤에 버티고 선 걸프 산유국 오너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렇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부는 중동의 지형을 재편했다. 한때 이 지역의 강자였던 이집트·이라크·시리아는 빈곤·분열·국가기능장애 등 다양한 이유로 더 이상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제 중동의 중심은 걸프만이다. 주요 걸프 산유국들 가운데 특히 사우디는 외교정책의 잔략적 대전환을 이뤘다.
사우디 왕국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집권초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머니를 조잡하고 고압적인 방식으로 사용했다. 카타르·레바논과 요르단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압력을 가했고, 예멘과는 열전을, 이란과는 냉전을 치렀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몇 년간 무함마드 빈 살만은 카타르·요르단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이란과 국교를 재개하는 한편 예멘과 평화협상을 추진했다.
걸프국들은 약속이나 한 듯 중동지역의 최대 고객인 중국과의 관계를 심화하고 있다. 2001년까지만 해도 사우디와 중국의 교역량은 40억 달러 정도로 미국 및 유럽연합(EU)과의 교역규모의 10%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2021년 한해 동안 이들과 중국 사이의 교역량은 870억 달러로 미국·EU와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이들 사이의 경제관계는 놀랄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심지어 워싱턴포스트지는 중국이 UAE에 군사시설 건설을 재개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와 걸프국들은 미국과의 결별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중국과는 밀접한 경제관계를, 미국과는 긴밀한 안보관계를 구축하고 싶어한다. 또 이들은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와 자유로이 거래할 수 있기를 원한다.
대다수 국가는 그들의 이익에 맞춰 서구와 동구 어디에서건 원하는 친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외교정책을 추구하고 싶어한다. 만약 사우디 왕세자가 현재의 외교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사우디는 걸프국들이 원하는 외교적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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