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다시 긴축의 고삐를 죄면서 세계 경제의 둔화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미 1년 이상의 금리 인상으로 충격을 받은 세계 경제는 또다시 펼쳐지는 고강도 통화정책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과 스위스·노르웨이·튀르키예 중앙은행은 22일(현지 시간) 각각 6월 통화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일제히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영국 중앙은행(BOE)은 25bp(1bp=0.01%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던 시장의 전망을 깨고 깜짝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는 31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5월 근원 물가가 7.1%로 전월(6.8%)보다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도 시장 전망을 넘어 빅스텝을 밟았으며 튀르키예는 그동안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해온 기조에서 유턴해 8.5%에서 15%로 대폭 올렸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동결로 글로벌 긴축 종료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냉혹한 인플레이션 현실이 경제의 희망 회로를 압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각국의 물가와 고용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주요국의 금리 인상이 한두 차례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TD증권 전략팀은 이날 메모에서 “BOE는 이번 빅스텝 이후 11월까지 0.25%포인트씩 세 차례 더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근원 인플레이션이 이미 목표치인 2%를 밑돌고 있는 스위스마저 성명에서 “아직 끝이 아니다”라며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이날 미 상원에 출석해 “금리가 추가 인상될 것으로 본다”고 재확인했다. 같은 자리에서 미셸 보먼 연준 이사 역시 “지난해 가을 이후 근원 인플레이션이 정체되고 있다”며 추가 인상을 지지했다. 연준이 기준금리 전망치(5.6%)대로 금리를 높일 경우 0.25%포인트씩 두 차례 인상이 필요하다.
긴축 재가속으로 세계 경제 침체 우려도 커졌다. 자산중개 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애널리스트는 “주요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고 추가 긴축을 예고하면서 세계 성장 전망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며 “이 시점에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추가된다면 세계 경제는 격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유럽부터 경제 상황이 빠르게 위축된 후 경제 약화 추세가 결국 미국으로 전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 각국의 금리 인상이 침체 전망과 맞물리면서 외환시장에서는 역설적으로 달러 강세가 나타나고 있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전일 대비 0.02포인트 오른 102.09를 기록했다. 미국보다 경제 체력이 약한 국가에서 금리를 높이면 결국 경기 침체로 이어져 통화가치가 하락한다는 시각이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도 위축돼 달러가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 또한 만만치 않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증권 전략가인 존 신은 “미국 달러는 고평가돼 있고 중기적으로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전날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역사적으로 종종 중앙은행들은 필요한 수준보다 한두 단계 더 나갔다”며 금리 인상 중단을 주장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반면 미국 주요 정책 결정권자들의 연착륙에 대한 희망은 여전하다. 파월 의장은 이날 “실업률을 크게 높이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길이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이날 “고용시장은 회복력이 있고 물가는 개선되고 있다. 침체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며 낙관론을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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