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 출생 미신고 영유아들이 숨진 채 발견되거나 유기된 사례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안전 사각지대를 돌파할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책 중 하나로 ‘출생통보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행정부처와 의료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십수 년째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신생아가 태어날 시 의료기관 등이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알리는 것을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은 지난 18대 국회부터 현 21대 국회까지 모두 15건 발의됐다.
지난 3월에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이 법안들은 의사 및 조산사 그외 분만에 관여한 사람이 출생아 및 부모에 관한 정보를 기록한 출생증명서를 일정 기간 내에 작성해 관할 지자체장에게 통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생신고는 오직 부모에게만 맡겨져 있다. 이를 어기더라도 형사 책임은 없으며, 5만원의 과태료 처분이 전부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독일 등에서 부모가 직접 출생신고를 하는 것과 별도로 의료기관에 출생 통지의무를 부여해 신고 누락이나 거짓 신고 등을 예방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해당 법안들은 한 차례도 국회 해당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의무 신고 기한과 주체를 놓고 의료계와 정부 부처가 입장차를 보이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의료계는 의료기관이 이미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고 있는 점을 들며 지자체 통보 의무까지 의료기관에 맡기는 것은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라고 지적한다. 의료기관은 분만에 따른 의료보험 수가를 청구할 때 출생 사실 뿐 아니라 영아의 성별과 몸무게 등 분만 기록을 시스템에 입력하고 저장하게 돼 있다. 이 데이터와 실제 출생신고 데이터를 비교하면 현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감사원이 이번 출생 미신고 영아 문제를 밝혀낸 것도 병원의 통보로 부여된 임시신생아 번호와 실제 출생신고를 비교해 분석한 결과이기도 하다. 김재유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의료기관은 출산이 이뤄질 때마다 해당 기록을 통보하고, 달마다 각 지역 보건소의 협조 요청에 따라 분만 기록을 보내는 등 이미 이중으로 통보하고 있다”며 “지자체 통보 의무까지 의료기관에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일곱 자리 숫자의 임시신생아 번호에는 모친의 정보가 없기 때문에 현행 규정으론 본인 동의 없이는 임시 번호를 통해 실제 출생신고 여부를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사회보장급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조속히 개정해 출생신고 여부를 교차 검수할 수 있는 안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출생통보제 도입에 대해선 협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일 복지부 차관은 전날 브리핑을 통해 “의료기관 출생통보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의료계와 협의를 원만히 진행하고 있다”며 “늦어도 7월에는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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