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정책통 의원들이 상호 출자 및 순환 출자 금지 등 대기업에 적용되는 규제 혁신의 필요성을 논의한다. 당내에서 앞서 유산세 개편, 대기업 오너 경영 성과 인정 등의 목소리가 표출된 데 이어 ‘반(反)기업 정당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이끄는 ‘글로벌 기업 국제 경쟁력 강화 의원 모임’은 27일 국회에서 대한상공회의소를 초청해 ‘기업 규제 혁신’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발제를 맡은 강석구 대한상의 본부장은 “반도체·배터리 산업 등에 대한 기업의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규제가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위주로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자산 총액이 10조 원을 넘는 기업에 적용되는 상호 출자 및 순환 출자 금지 규제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토론회에는 삼성·SK·현대자동차·LG·포스코·롯데·한화 등 대한상의 7대 기업 임원단이 참석해 재계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그간 산업계는 글로벌 경쟁 기업과 달리 우리나라 기업의 규제 부담이 크다고 지적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4일 발표한 ‘2023년 대기업 차별 규제 현황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대기업에 적용되는 규제는 61개 법률에 총 342개가 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산 총액이 5000억 원, 5조 원, 10조 원 등으로 늘어날 때 규제도 각각 126개, 65개, 68개가 추가 적용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기업이 오히려 규모 확대를 꺼린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대기업 비중은 0.09%로 34개국 중 33위였다.
글로벌 기업 모임은 이 같은 대기업 규제 개혁을 포함해 민주당의 반기업적 기조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첫 토론회 주제도 유산취득세 방식의 상속세 개편에 대한 필요성이었다. ‘초부자 감세’를 반대해온 민주당에서 기업의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온 것이다. 두 번째 토론회에서는 삼성의 ‘오너 경영’에 대해 ‘세계적인 기업을 만든 기업 문화’라고 평가했다. 당 강령에 ‘재벌 개혁’을 명시할 만큼 기업 비판적 견해를 유지해온 민주당 내에서 이뤄진 친기업적 행보에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모임에는 정성호·안규백·고용진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3명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번 토론회에 동참한다. 박 원내대표는 최근 대법원의 ‘타다’ 전 경영진에 대한 무죄판결에 대해 “타다의 승소는 국회의 패소라는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원내 지도부 차원의 친기업적 행보가 계속되는 것을 놓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도층을 끌어안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의원의 모임을 중심으로 민주당의 ‘반기업 정당’ 탈피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 정치권에서는 대기업을 제한하려 했지만 최근 인식이 바뀌는 모습”이라며 “경제를 살린다는 공통의 목표 아래 서로 신뢰하고 협의점을 찾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