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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교원·화가·작가…“五춘기, 부캐로 이겨냈죠”

■양성필 코바코 디지털전략팀장

"에너지 80% 현재, 20% 미래 준비"

4년째 외국인 노동자 대상 국어 강연

100명 목표, 지인 초상화 그려 선물도

‘오십, 인생 후반의 즐거움을 준비하는 시간’ 출간

"사소한 것부터 시작, 걱정 말고 도전"


50대가 겪는 심리적 변화를 ‘오춘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의 중장년은 인생 2막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고, 무력감과 우울감을 호소하곤 한다. 양성필(53·사진)씨는 ‘부캐(부캐릭터)’로 오춘기를 극복하고, 인생의 낙을 찾았다. 그의 본업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코바코) 디지털전략팀장, 부캐는 무려 7개다. 그는 한국어 교원, 다문화협회 이사, 아마추어 화가, 걷기 모임 대표, 작가, 칼럼니스트, 강연자 등으로 활동하면서 ‘오춘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프점프는 지난 23일 서울 종로 본사에서 양성필씨를 만나 ‘부캐’가 가져온 삶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23일 서울 종로 본사에서 양성필씨가 신간 ‘오십, 인생 후반의 즐거움을 준비하는시간’을 들고 있다./정예지 기자




50번째 생일을 앞두고 찾아온 ‘오춘기’

2019년, 중장년은 으레 감기처럼 앓는다는 ‘오춘기’가 그에게도 찾아왔다. 정년까지 몇 년이 남았는지 두 손으로 셀 수 있게 되자 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됐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정년 이후의 30~4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함이 밀려왔다. 심한 불면증과 우울에 시달렸다. 몇달간 밤을 지새워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 시기, 우연히 ‘인생은 50부터’라는 문구를 만났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문구가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세상이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았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안에 자리 잡았다.

한국어 교원, 작가 등 부캐 7가지 만들어

그는 막연히 꿈꾸던 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그는 한국어 교원으로 변신한다. 2020년 1월부터 의정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사이버 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해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과 ‘다문화사회 전문가 2급 수료증’도 취득했다. 또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에서 운영이사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에너지의 80%는 현재에 쓰고, 20%는 앞으로 올 날들을 준비하는데 사용한다. 그렇게 4년에 걸쳐 부캐 7개를 만들었다. 한국어 교원, 다문화협회 이사, 아마추어 화가, 걷기 모임 대표, 작가, 칼럼니스트, 강연자 등 그의 퇴근 후 일정은 여러 가지 부캐로 꽉 차있다. 빡빡한 일정에 피곤하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지금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캐를 만나고 그의 일상은 설레는 일로 가득 찼다. 언젠가 해외에 있는 한국어·한국문화교육 기관 세종학당의 교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꿈꾼다.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 만큼 패션을 좋아하는 그는 종종 시니어 모델로 런웨이를 걷는 상상도 한다.

“예전의 제 모습과 비교하면 지금의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예요. 회사 이야기만 하던 사람이었거든요. 퇴근하고 나서도 회사 일만 생각했죠. 그런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도요. 요즘은 9시부터 6시까지만 회사 업무를 보고, 그 후의 시간은 나를 위해서 쓰고 있어요."

‘인생 2막 즐겁게 사는 법’ 노하우를 담아 책 출간



그는 중장년에게 ‘케렌시아(Querencia)’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케렌시아는 투우에서 소가 힘을 되찾기 위해 숨을 고르는 장소다. 사람으로 치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곳. 그에게 그런 공간은 화실이다. 가족, 친구 등 아끼는 이 64명의 얼굴을 도화지에 그렸다. 2019년 회복을 위해 시작한 활동이 그와 지인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가져왔다. 100명을 채워 초상화 전시회를 여는 게 목표다. “저는 제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전혀 생각도 못 했어요. 뭐든지 해봐야 하더라고요.”

양성필씨가 그린 초상화 모음 / 사진 = 양성필 제공


그의 또 다른 취미는 ‘걷기’다.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동작대교 등 한강을 가로지르며 몇 시간이고 걷는다. 버킷리스트에 올레길 종주가 자연히 추가됐다. 그는 2022년 기준 제주도 올레길 총 26개 코스, 425km를 2년 7개월에 걸쳐 완주했다. 완주자를 기록하는 명예의 전당 누리집에 그의 사진과 이름이 16824번째로 기록됐다.

그는 오춘기를 이겨내기 위해 수많은 도전을 해왔다. 결국 ‘부캐’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 그는 누구라도 그의 경험으로 도움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의 활력을 어떻게 되찾았는지 그간의 과정과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50세를 앞두고 고민해 왔던 것들과 4년 동안 터득한 삶의 노하우를 책 ‘오십, 인생 후반의 즐거움을 준비하는 시간’에 담았다.

23일 서울 종로 본사에서 양성필씨가 신간 ‘오십, 인생 후반의 즐거움을 준비하는시간’을 들고 있다./정예지 기자


책에서 그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는 사람이 바로 21세기 문맹인”이라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말을 인용하며, 중년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변화와 지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책에서 중요 부분을 뽑아 기록하는 독서법 ‘초서(抄書)’와 4~5권 정도의 책을 동시에 읽는 ‘다중 읽기’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며 독서 노하우를 공유했다. 또 버킷리스트(Bucket list·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목표 리스트)를 적어보고, 그중 하나라도 지속해서 해보라고도 조언했다. 블로그에 글을 쓴 계기로 책을 집필하게 됐고, 꾸준히 걸으면서 올레길을 종주한 경험을 전하며 시작이 아무리 늦었더라도 ‘지속적인 열정’이 있다면 성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가 추천한 21가지 습관을 몸에 들인다면 50세란 나이는 100세 시대에서 남은 50년을 다시 꾸릴 재도약의 기회다.

그는 “부캐를 통해 나 자신을 드디어 챙길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하며 “부캐 활동은 모두 ‘사소한 시작’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래 중장년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실패를 걱정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사소한 것들이 인생 후반에 어떤 행복을 가져올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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