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전하께 용기를 넣어 드릴게요.”
지난달 공개된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 연극 ‘세인트 조앤’의 한 장면. ‘잔 다르크(백은혜)’가 다가가 ‘샤를 7세(이승주)’에게 말을 걸자 샤를 7세는 “나는 용기를 갖고 싶지 않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두려움에 찬 왕과 소녀 기사가 팽팽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가운데, 영상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더 있다. 배우들을 대신해 수어로 이야기하는 수어통역사들이다. 이들의 이미지는 연극 속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대사를 수어로 통역한다. 인물들이 토해내는 분노와 결의가 모두 영상 속 수어 안에 담겼다.
국립극단 등 공공극장이 공연의 장벽을 낮추고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배리어프리’ 공연을 활발하게 제작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연에서는 수어통역사가 직접 무대 위에 올라 공연 속에 녹아들고, 온라인 공연 영상에서는 수어통역사가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이해를 돕는 모양새다.
그간 장애인이 문화 예술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점은 꾸준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2021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 및 여가활동에 대해 불만족한다는 응답은 51.1%로, 절반 이상이 문화 활동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년 간 ‘연극·뮤지컬·무용’은 97% 이상이 관람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돼 접근성 제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국립극단의 ‘네 번째 극장’을 표방한 OTT 플랫폼 ‘온라인 극장’이 배리어프리 요소를 도입했다. 공연 영상을 감상하는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수어 통역과 화면 해설을 진행한 영상을 별도로 제작했다. 수어 통역의 경우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을 통해 장애인들의 실제 피드백을 받으면서 변화를 거듭했다. 화면의 우측에서 2명의 수어통역사가 수어를 통역하던 기존 배치는 시선이 분산된다는 피드백에 수어통역사의 위치를 하단으로 옮겼다. 그러나 수어통역사를 둘러싼 배경이 무대를 가린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에 배경을 지워냈다. 최근작인 ‘세인트 조앤’에서 수어통역사들이 자유롭게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수어를 통역할 수 있던 이유다.
국립극단은 2021년 연극 ‘로드킬 인 더 시어터’를 전 회차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진행하고 배리어프리 공연 접근성 강화 매뉴얼을 제작하는 등 적극적으로 배리어프리 공연을 선보여 왔다. 수어통역사는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수어통역을 동시 진행하는 한편,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도 함께 이뤄졌다. 무대 위 설치된 패널에는 한글 자막이 띄워졌다.
공연을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도 배리어프리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 공연 소식을 알리는 단계부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소셜미디어(SNS)에 대체텍스트를 입력하거나 수어로 된 예매 안내 영상을 만드는 등 마케팅 측면에서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공공극장들도 배리어프리 공연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국립극장은 25일 막을 내린 연극 ‘우리 읍내’에서 수어통역사 5명과 음성해설사 1명이 직접 참여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농인 배우 2명과 청인(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비장애인) 배우 14명은 수어와 음성언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공연의 경계를 없앴다. 세종문화회관은 다음달 22~23일 '싱크 넥스트 23' 중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물질' 공연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무대와 소품을 만져보는 터치 투어를 진행하고, FM수신기를 이용해 시각 정보를 음성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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