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반란이 ‘36시간의 쿠데타’로 끝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나란히 첫 공식 발언을 내놓았다. 양측 모두 ‘푸틴 정권 전복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크렘린궁의 절대 권력에 생긴 균열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달러 대비 루블화 가치는 1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푸틴 대통령은 27일(현지 시간) 크렘린궁 내 광장에서 반란 진압에 참여한 군인들을 치하하며 “반란은 국민과 군의 지지를 절대로 얻지 못했다. 여러분이 사실상 내전을 막았다”고 말했다. 앞서 전날 TV 연설에서는 바그너그룹이 수도 인근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을 당시 허술한 방어 체계에 대해 “사태 초반 대규모 유혈 사태를 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해명했다. 전쟁에 크게 기여했지만 ‘실수’를 저지른 용병들을 바로 진압하는 대신 일부러 여지를 줬다는 주장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의 반응은 불충의 대가가 상상만큼 크지 않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러시아 정부는 27일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에 대한 무장 반란 혐의 수사를 모두 종결했으며 바그너그룹의 중화기를 모두 넘겨받기로 했다.
반란을 중단한 뒤 행방이 묘연했던 프리고진도 이틀 만인 26일 텔레그램 메시지로 “반란은 러시아 정부 전복이 아니라 바그너그룹의 파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불의 때문에 행진을 시작했다”며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국방부에 의해) 7월 1일 이후 존재하지 않을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프리고진이 27일 수도 민스크에 도착했다며 “그가 한동안 벨라루스에 머무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바그너그룹이 벨라루스에 새 거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추측도 내놓는다.
서방은 이번 사태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추이를 지켜보는 입장이다.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럽 정상들과의 논의에서 러시아 측이 서방을 탓할 빌미를 주면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며 “우리는 아무 관련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러시아 체제 내 투쟁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와 그들의 서방 후원자, 국가 반역자 등 러시아의 적들이 원하는 것은 동족상잔”이라며 외부 세력의 이간질 가능성을 시사하자 ‘선 긋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안보팀에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며 향후 러시아의 상황과 관계없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러시아 루블화는 이날 장중 달러당 84.25~87.23루블을 오가며 지난해 3월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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