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깨워주셔서 감사한데 가족들을 힘들게 만들어서 죄송하다.”
인천에서 계모의 학대로 온몸에 멍이 든 채 숨진 12살 초등학생의 사망 전 일기장 내용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학대 당한 아이의 자책하는 일기를 들으면서도 계모는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인천지법 형사15부(류호중 부장판사)는 30일 아동학대살해 등 혐의로 기소된 계모 A씨(43)의 3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개된 일기장에는 A씨 의붓아들 B군(사망 당시 12살)이 지난해 6월 1일 학대를 당하고도 되레 자신을 자책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B군은 "어머니께서 오늘 6시 30분에 깨워주셨는데 제가 정신 안 차리고 7시 30분이 돼서도 (성경을) 10절밖에 안 쓰고 있었다"며 "어머니께서 똑바로 하라고 하시는데 꼬라지를 부렸다"고 썼다.
또 "매일 성경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잠을 못 주무셔서 힘드신데 매일매일 6시 30분에 깨워주셔서 감사한데 저는 7시 40분까지 모르고 늦게 나왔다"며 "어머니께서 제 종아리를 치료하시고 스트레스 받으시고 그 시간 동생들과 아버지께서도 힘들게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적었다.
B군은 체벌을 받은 내용도 담았다. 같은 해 12월에 "무릎을 꿇고 벌을 섰다"라거나 "의자에 묶여 있었다"는 내용을 일기장에 작성했다.
최근 자신이 낳은 신생아를 가슴에 안은 채 법정에 출석한 A씨는 일기장과 관련해 "가족들과 나들이 가는 날도 있고 여러 날이 있었는데 일기장에는 일부 내용만 쓴 거 같다"며 "일기장에 잘못했던 것 돌아보면서 쓰도록 해서 (자책하는 내용이 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B군을 학대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양육 노력을 했고 범행 당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정신·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다"며 "감당이 안 돼서 시댁에 내려가는 방법도 알아보고 있었고 유학도 추진하고 있어서 남편과 의논해야 하는데 크게 대화할 수 있는 상황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또 "(B군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면서) 아이가 음악을 좋아해서 기타나 피아노 등 음악 공부를 많이 했다"며 "학습지도 하고 공부도 했는데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공부보다는 하고 싶은 거 하게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앞서 A씨는 지난해 3월 9일부터 지난 2월 7일까지 11개월 동안 인천시 남동구 아파트에서 의붓아들 B군을 반복해서 때리는 등 50차례 학대해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A씨는 지난해 4월 태아를 유산하자 모든 원망을 B군에게 쏟아내며 점차 심하게 학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친부인 C씨(40)도 2021년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드럼 스틱으로 아들 B군을 폭행하는 등 15차례 학대하고 아내 A씨의 학대를 알고도 방임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소장에는 부부의 잔혹한 범행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난해 3월 9일 A씨는 B군을 처음으로 학대했다. 그는 B군이 돈을 훔쳤다며 드럼 스틱으로 종아리를 10회가량 때렸다. 이후 학대의 강도가 점차 강해졌고 빈도도 잦아졌다. A씨는 체벌 도구로 플라스틱 옷걸이, 선반받침봉 등을 썼는데 연필로 의붓아들의 몸을 수십회 찍기도 했다.
성경 필사도 학대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B군의 집중력을 향상시킨다는 핑계였다. 성경 필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4시간 동안 벽을 보고 무릎을 꿇고 있게 하거나 5시간 동안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성경을 옮겨 적도록 하기도 했다. 아침 반성 시간에 방 밖으로 나왔다며 눈을 가리고 의자에 묶어뒀고 감시용 홈캠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무릎 꿇고 벌을 세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대를 저질렀다.
부모로부터 장기간 반복적으로 학대를 당한 B군은 10살이던 2021년에 38㎏이던 몸무게가 사망 당일에는 29.5㎏으로 줄었다. 사망 당시 온몸에서 멍과 상처가 발견됐다. B군이 숨지기 며칠 전에도 A씨는 전신을 수십회 폭행하고 16시간 동안 의자에 묶어뒀다. B군은 잇단 학대로 인한 내부 출혈로 끝내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생명의 불씨가 꺼져갔다. 아이는 계모의 팔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사과했건만 A씨는 B군을 힘껏 밀쳐버렸다. 이 때문에 뒤로 넘어진 B군이 머리를 바닥에 부딪혀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