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에서 주목할 만한 아이돌과 아티스트, 허지영 기자가 케-해석 해봤습니다!
여름이 되면 대다수 아이돌 그룹이 '청량'이라는 바다에 뛰어든다. 맑고 시원한 곡은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평타 이상은 치는 효자 콘셉트다. 청량은 주로 '청춘'과 단짝이다. 가수와 팬덤의 연령대가 비슷한 아이돌 산업 안에서, 청춘 역시 한 번쯤은 거쳐 가야 하는 단골 키워드다. 그룹 위아이(WEi)도, 데뷔 2년 만에 이 청춘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위아이는 29일 미니 6집 '러브 파트 3 : 이터널리(Love Pt. 3 : Eternally)'를 발매했다. 지난해 3월 발매한 '러브 파트 1 : 퍼스트 러브(Love Pt.1 : First Love)'와 10월 발매한 '러브 파트 2 : 패션(Love Pt.2 : Passion)'을 이은 '러브' 시리즈를 종결짓는 앨범이다. 해변가, 마린룩, 야자수 등 비주얼은 직관적으로 '여름', '청량'을 가리키고 있다. 메시지로는 청량의 단짝인 청춘이 소환됐다. '나'를 사랑하자는 내용이다.
타이틀곡 '질주(OVERDRIVE)'는 언뜻 제목만 보면 직선적이고 힘 있는 콘셉트일까 싶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유약하고 부드러운 멜로디와 감정이 담겨 있다. 가사말은 분명히 전진의 뉘앙스를 보이고 있지만, '질주'라고 표현하기엔 어딘가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떠나볼래 저 멀리', '난 잃어버린 나를 찾아', '언제 끝날지 모른대도 낯선 길이라도 가볼래' 등이 그렇다. 발랄함과 아련함, 전진의 이미지와 망설이는 이미지가 공존하는, 양면성이 돋보이는 곡이다.
위아이의 전작은 이렇게 애매모호하지 않았다. 전작 '러브 파트 2 : 패션'의 타이틀곡 '스프레이(Spray)'는 사랑에 빠져든 상태의 강렬한 감정이라는, '러브 파트 1 : 퍼스트 러브'의 타이틀곡 '투 배드(Too Bad)'는 첫사랑이라는 명확한 소재들 안에서 통일성 있는 콘셉트를 소화했다. 이런 이유로 이번 앨범의 수록곡 '비 올라이트(Be Alright)', '스릴러(Thriller)' 두 곡은 오히려 전작에 잘 어울리게 느껴지기도 한다.
'러브' 시리즈가 이렇게 애매모호해진 이유는 이들이 사랑의 대상을 완전히 바꿨기 때문이다. 타인을 사랑하는 감정을 노래하던 위아이는 이번 앨범에서 그 대상을 그들 자신으로 바꿨다. 두 앨범 사이에 공통점은 '사랑'이라는 광범위한 범주의 단어뿐이다. 따라서 위아이가 '러브' 시리즈에서 전개하고 있던 타인과의 사랑, 앨범을 거듭할수록 짙어지던 그 농도와 감정을 흥미롭게 좇던 팬이라면, 이번 앨범은 다소 튀는 행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갑자기 색채를 확 바꾼 이 마지막 '러브' 앨범이 시리즈에 독이 될까. 통일성이 없어 보일 수도, 시리즈로 묶기엔 접점이 희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멤버들의 대답은 확실했다. 완성도는 당연히 완벽하거니와 세 번의 '러브' 시리즈를 통해 비로소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나름의 답도 찾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답은, '함께'였다.
위아이는 팬들 사이에서 멤버들끼리 사이가 좋기로 유명하다. 연습생 시스템부터 시작해 단체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내 아이돌 산업에서 팀워크는 중요한 그룹의 자산이자 강점이 될 수 있다. 멤버들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이들의 훌륭한 팀워크가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멤버 석화를 제외한 5명의 멤버 모두가 굵직한 개인 활동 경력이 있다.
우선 요한은 지난 2019년 방송된 엠넷 '프로듀스 X 101' 프로그램에서 무려 최종 순위 1위에 오르며 엑스원(X1) 멤버가 됐다. 동한은 2017년 방송된 '프로듀스 101 2'를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제이비제이(JBJ)에서 꼬박 2년을 활동한 뒤 솔로 앨범도 발매했으며, 대현도 같은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그룹인 '레인즈(RAINS)' 활동 이력이 있다. 용하와 준서는 2018년 방송된 MBC '언더나인틴'에서 결성된 그룹 원 더 나인으로 활동했다. 현재 위아이의 소속사인 위엔터테인먼트에 멤버들이 모두 모이기까지도 약 4년이 걸렸다.
이 중 요한이 속한 엑스원은 데뷔 앨범 초동 판매량이 50만 장을 넘기며 당시 케이팝 역사상 최초로 데뷔 앨범이 하프밀리언을 달성한 바 있으며, 동한이 활동했던 JBJ도 두 번째 활동으로 음악 방송 1위를 하는 등, 두 사람은 소위 잘나가는 그룹에 속해 있었다. 2020년 위아이로 재데뷔할 당시 이들의 화려한 경력으로 후광 효과가 있긴 했으나 당시 데뷔 앨범 '아이덴티티 : 퍼스트 사이트'는 초동 판매량이 3만 장을 넘기지 못했다. 이들로선 많은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멤버들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안팎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데뷔 2년이 지난 지금, 그 어떤 그룹보다도 단단한 신뢰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신보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석화는 컴백을 맞이해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러브' 시리즈를 진행하며 비로소 우리가 무엇을 잘하는지 깨달았다"고 밝혔는데, 바로 '케미스트리'였다. 대현은 한 술 더 떠 "멤버들끼리 마주 보고 춤추는 구간이 나오면 '이제 웃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위아이의 청량, 위아이의 청춘, 위아이의 정체성은 여섯 명이 정확한 각에 맞춰 한 몸이 된 듯 춤추는 화려한 퍼포먼스보다도, 여섯 명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싱그러운 웃음에 있었던 것이다.
탈퇴, 범죄, 각종 분쟁 등 여러 사건·사고로 연차를 가리지 않고 많은 아이돌이 진통을 겪는 요즘, '멤버들끼리 함께 웃으면서 무대 하는 게 좋다'고 말하며 웃는 아이돌은 꽤 귀하게 느껴진다. 단순한 말이지만, 멤버들의 눈빛에는 하루하루 무대를 조금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기쁨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신보의 '청량'과 '청춘'은 단순히 일회적인 콘셉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보는 "우리가 즐기면 관객도 분명히 즐긴다"는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깨달음을 소중히 지키고자 꺼내든, 그룹의 '롱런'을 위한 영양제 같은 앨범이다. 위아이의 다음 앨범이, 다음 무대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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