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연세대·한양대 반도체학과 1차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대부분의 합격자들이 의대 진학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뿐만 아니라 의대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서울대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제 반도체 강국, 엔지니어링 강국 대한민국은 저물고 의료 강국 대한민국으로 바뀌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재 한국의 최상위 인재를 쓸어 담는 의대 열풍의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라는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명예로운 직업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꿈꾸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2020년 기준 의사의 평균 연봉이 2억 3000만 원이라고 한다. 대기업 평균 연봉의 두 배가 넘는다. 어찌 보면 수능 고득점자가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장래를 대비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의대 진학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한민국 영재와 수재들의 의대 쏠림이 장차 대한민국의 국가적 의료 수준 향상을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국가 전체로 볼 때 국가 기반 역량은 물론 과학기술 국가 경쟁력 약화와 직결된 문제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수월성을 결정짓는 첫 번째 요소가 우수 인재 확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대 진학을 선택한 청년들을 탓할 수는 없다. 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최상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둬야 하듯이 지금이라도 유인책을 마련해야 우수 인재들을 이공계·과학기술계로 끌어들일 수 있다.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은 과학기술자의 연봉을 의사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현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우수한 과학기술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들은 연구를 통해 얻은 특허나 기술 등 ‘직무 발명’에 대한 권리를 기업 등에 이전하면 대가로 ‘직무발명보상금’을 받는다. 최근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의 경우 기업으로 이전되는 기술 규모가 확대되면서 보상금을 지급받는 연구자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투입된 노력에 비해 보상금 규모가 작아 아쉬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는 직무발명보상금이 ‘연구자의 발명 의욕 고취와 기업의 생산성 제고’를 위해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전액 비과세 대상이었다. 하지만 2016년부터는 근로소득으로 분류되면서 세금을 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법원에서는 직무발명보상금이 특허 등 권리 승계의 대가로서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지만, 이후 소득세법이 개정되면서 근로소득에 포함된 것이다. 특히 현행법에 따르면 보상금 규모가 클 경우 로또보다도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직무발명보상금 제도가 당초 제정 취지에 맞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 보상금을 예전처럼 다시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비과세 한도를 대폭 상향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과학기술인들이 정당하게 보상받고, 이것이 새로운 기술 창출의 동기부여로 연결되는 선순환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소위 과학기술로 부자 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 출연 연구 기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연구자가 가져야 할 덕목’과 ‘연구자로서 만족하는 부분’ 2위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명감’이었다. 연구자들이 단순히 부(富)를 얻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연구가 국가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이 원동력인 것이다. 이에 이들의 사명감을 더 북돋울 수 있는 보상책이 마련된다면 이공계 연구자들은 더욱 열심히 연구 의지를 불태울 것이고 이러한 노력들이 이공계 열풍으로, 또 국가 과학기술 발전으로 연결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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