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새벽 1~2시 넘어서까지 기타를 계속 치더라고요. 처음에는 참았는데 점점 심해지더니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서울 동작구의 한 고시원에 거주 중인 대학생 A(22)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벽간소음’으로 인해 밤마다 고통 받고 있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그러면서 A씨는 “내려가서 관리하시는 분한테 이야기를 했지만 구두 경고가 전부였고, 블랙리스트같은 게 있는 것 같지만 안 고쳐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새벽마다 들려오는 소음을 참다 못해 고시원 관리인을 찾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학생, 청년 등이 주로 거주하는 고시원, 원룸 등은 방음에 취약해 이 같은 갈등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청약을 받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 예능인도 최근 이웃과 벽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에서도 층간, 벽간소음이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고시원이나 원룸에서 이 같은 갈등은 비일비재하다.
A씨처럼 이웃의 소음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지나치게 예민한 이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시 강서구에서 홀로 살고 있는 B(25)씨는 “떠드는 소리도 아니고 걸음 소리가 들린다고 민원을 받은 적 있다”며 “옆집이 예민하게 구는 탓에 경찰이 와서 제재한 적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과도한 벽간소음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생활 소음’마저도 벽을 넘어 생생히 들릴 만큼 취약한 원룸, 고시원 등에서 거주하는 청년들의 고민이 깊은 상황이다.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갈등과 분쟁 심지어 폭행 사건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벽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조치는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층간소음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벽간소음에 대한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주택건설기준 규정 제14조는 각 층간 바닥의 충격음은 49㏈(데시벨) 이하로 건설하게끔 되어 있으나 ‘세대 간 경계벽’은 소재와 두께만 명시돼 있을 뿐 데시벨 규정은 없다. 층간소음의 경우 충격음 차단 성능을 확인하는 사전인증제와 사후확인제를 통해 일부 해결할 수 있지만 벽간소음 관련 제도는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벽간소음의 경우 현재 관련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층간소음과 달리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차상곤 주거문화 개선 연구소장은 “실제 (벽간소음) 민원은 많이 들어온다”면서도 “통계는 잡히는 게 없다. 벽간소음인지 층간소음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통계가 잘 잡히지 않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관련 통계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 원룸, 고시텔 등은 소음을 예방하기 위한 별다른 시공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파트를 시공할 때는 정해져 있는 바닥 슬래브 두께 등 기준조차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룸, 고시텔 등 거주자들은 일정 수준의 소음을 감내하며 살 수밖에 없다. 서울시 서대문구의 원룸에 살고 있는 C(22)씨는 “드라이기 소리나 재채기 소리 같은 생활 소음이 들린다”면서도 “옆집 드라이기 소리가 시끄럽다고 해서 ‘머리 말리지 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나도 저만큼 시끄럽겠지 생각하며 참고 산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벽간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 제도 정비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차 소장은 “원룸이나 고시원 등은 건물 자체를 어떻게 지으라는 규제 기준도 없고,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렇다 보니 벽간이든 층간이든 소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우선적으로 아파트에 적용하는 소음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민원상담 서비스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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