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끼던 제자로부터 작은 동네 의원을 열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더 잘하고 싶다며 2년간 외상외과 전임의 과정을 밟은 친구라 내심 기대가 컸는데 수술실 없이 주사치료만 한다더라고요. 훌륭한 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사명으로 평생을 달려온 후배들이 적자를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정홍근 대한정형외과학회 이사장(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은 5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정형외과 수술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다 보니 수술을 포기하는 개원의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의사가 부족한 건 둘째 치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도 수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정 이사장의 진단이다.
정형외과에서 수술적 치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데 학회 조사 결과 정형외과 개원의 10명 중 3명은 수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수술방이 필요하다. 넓은 공간에 수억 원을 호가하는 수술 장비와 기기를 구비하고 간호사 등 수술 보조 인력도 더 많이 고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원가 자체가 높다. 반면 수술비는 몇십만 원에 불과하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술을 포기한 채 도수치료·물리치료·주사치료 등 비수술적 치료만 한다는 얘기다.
정 이사장은 “아무리 간단한 수술도 최소 1시간 이상 소요된다. 하루 8시간을 꼬박 투입한다고 가정할 때 외래 진료를 보며 주사치료를 하는 편이 예닐곱 번씩 수술하는 것보다 4~5배가량 수입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화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 인공관절 치환술의 국가별 수가를 보면 열악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퇴행성관절염이 생긴 무릎 연골을 제거하고 인공관절로 바꿔주는 인공슬관절 치환술의 국내 시술 비용은 2022년 기준 424.23달러로 미국 메디케어에 공개된 시술료(1408.3달러)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은 인공슬관절 치환 시술료가 6996달러로 16배 이상 높게 책정돼 있다.
정 이사장은 “한국의 의료 수준은 일본·중국보다 앞서 있는 것은 물론 미국에 가서도 더 배울 게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런데 이게 맞나 의심될 정도로 수술비 차이가 크다”며 “이런 수가 시스템으로는 정형외과 의사들이 수술을 지속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단 동네 의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술을 받으려면 최소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대학병원에서조차 정형외과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인 전문 진료 질병군 중 정형외과 질환은 3%에 불과하다. 정형외과 수술을 할수록 병원의 중증도가 낮아져 상급종합병원 퇴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심지어 정형외과는 다른 진료과보다도 수술 수가가 낮다.
정 이사장은 “갑상선암 근치적 절제술은 인공관절 치환술보다 적은 시간이 소요되는데도 비용이 120만 원 내외로 2배 이상 높다”면서 “병원 입장에서는 수술을 할수록 적자에 중증도마저 낮아지는 정형외과 수술을 달가워하기 힘든 구조”라며 씁쓸해했다.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얼핏 봐서는 정형외과의 위기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형외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은 2018년도 163.3%에서 2020년도 187.8%까지 올랐고 2022년에도 182.4%를 기록했다. 그런데 정작 수술을 하려는 정형외과 전문의는 줄고 있다. 수련 기간이 끝나고 나면 전임의로 남으려 하지 않는다는 게 단편적인 예다. 병원당 전임의를 5명 이상 뽑을 수 있는데 전임의가 1명이거나 아예 없는 수련 병원이 절반이나 된다.
정 이사장은 “정형외과는 팔·다리·관절별로 분과가 나뉘고 외과와 비교해도 수술의 종류가 많다. 전임의 2년을 더 한다고 해도 수술을 쉽게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환자들이 수술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순간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렵게 쌓아 올린 정형외과 수술 실력이 퇴보할 뿐 아니라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칫 동남아시아에서 실력이 낮은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며 “제로섬게임을 유도하는 상대 가치의 틀을 깨고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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