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고자세를 취해온 중국이 돌연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영삼 외교부 차관보는 4일 베이징에서 중국 외교부의 초청으로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차관)과 만났다. 3시간 넘게 진행된 회동 뒤 중국 외교부는 “(한중 관계가) 건전한 발전의 궤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3일 베이징에서 이뤄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중국 인민은행 서열 1위 판궁성 공산당위원회 서기의 만남도 중국 측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미국의 첨단 반도체 공급망 배제 등 이른바 ‘디리스킹(위험 경감)’에 대응하는 중국의 맞불 조치는 강도를 더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세관)는 3일 첨단 반도체 웨이퍼 제작 등에 사용되는 갈륨과 게르마늄 관련 품목들을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원료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 말을 잘 듣는 국가에는 희귀 금속을 주고 안 듣는 나라에는 수출을 제한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셈이다. 중국은 4일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의 다음 주 방중 일정 계획 취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 같은 조치는 지난주 EU 정상회의에서 거론된 ‘대(對)중국 디리스킹’에 대한 맞대응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중국의 잇단 대화 제안은 반길 만하지만 그 안에 숨긴 ‘칼’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외교 라인 1인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3일 칭다오에서 열린 국제포럼에서 “비바람 뒤에 햇빛이 나오는 것처럼 한중일이 기회를 잡자”면서도 “아무리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콧대를 높이 세워도 서양인이 될 수 없다”는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늑대 전사 외교’를 펴온 중국의 유화·강경 두 얼굴은 공급망 재편, 대만 문제, 북핵 문제 등에서 한국을 교묘하게 굴복시키려는 술책일 수 있다. 우리는 한미 동맹 강화에 중심을 두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는 상호 존중하면서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호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중국에 휘둘리지 않고 한중 관계를 성숙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정교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할 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