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자 측은 내수 소비 활성화 등을 이유로 26.9% 인상된 시간당 1만 2210원의 최저임금을 요구했고 사용자 측은 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이후 노사가 두 차례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간극이 여전히 커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시장경제에서 임금이란 노동자의 생산성을 고려한 사용자 측의 노동 수요와 여가·생계비 등을 고려한 노동자 측의 노동 공급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이때 노동생산성 증가보다 과도한 임금 상승은 사용자 측이 감당하기 힘든 인건비 부담이라는 부메랑이 돼 노동자 측에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돌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성장률이 2%가 안 되는데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6%를 넘을 수 있을까. 노동과 함께 생산 과정에서 투입되는 자본의 공헌도가 급락하지 않는다면 노동생산성이 26% 이상 증가하면서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도는 현상은 관찰하기 힘들다. 경제학계 다수의 연구 논문들도 한국에서 최근 최저임금이 유례없는 속도로 상승함에 따라 임금 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앞질렀음을 보고하고 있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이미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다.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9620원이다. 이는 일본의 평균 최저임금(8702원)보다 높고 대만(7333원)·홍콩(6544원)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아시아를 넘어 미국 텍사스·펜실베이니아 등 20개 주(9280원)보다도 높다. 최저임금의 단순한 국가 간 비교는 변동이 심한 환율의 영향을 받는 것을 감안해 국가들의 중위 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최상위권이다. 한국의 중위 임금 대비 최저임금은 지난해 62.2%로 미국(28%)·일본(46.2%)을 훌쩍 넘는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이 비율이 한국보다 높은 국가는 콜롬비아·튀르키예·코스타리카·칠레·뉴질랜드·포르투갈 정도다. 이 비율이 높다는 것은 최저임금이 절대액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하는 최저임금의 보장 기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으로는 물론 상대적으로도 높은 한국의 최저임금이 26% 증가하면 노동자 측의 주장대로 내수 소비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답을 제시하는 것 같다. 요즘 식당·커피숍 등에서 직원에게 주문하기보다 무인 판매기를 이용하는 모습은 이미 일상화됐다. 주문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신해 로봇이 서빙하는 식당과 카페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 같은 변화는 노동생산성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으로 최저임금이 보호해야 하는 밑바닥 일자리들이 기계 또는 로봇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결과다.
최저임금이 현실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높아지다 보니 최저임금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비율인 최저임금 미만율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 미만율은 12.7%에 달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이 비율이 29.6%에 달했고 농림어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에서는 30%를 훌쩍 넘었다. 높은 최저임금 미만율은 최저임금과 시장 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음을 뜻한다.
최근 세계은행(WB)의 한 연구는 한국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경직적인 노동시장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고용 반응을 살펴봤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높은 최저임금과 경직적인 고용 환경 때문에 제조업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해외로 자원을 옮겨 한국에서의 고용을 줄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시장의 반응으로 일자리는 로봇, 무인 판매기로 대체되고 기업들의 해외 투자 선호로 국내 고용은 줄어들고 있다. 노동자 측은 26%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최저임금 상승이 내수 소비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생산성의 뒷받침이 없는 최저임금의 빠른 상승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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