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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 7000만원 '항암제' 무상공급…제약업계 맏형 ‘유한’의 행보가 주는 메시지 [View & Insight]

비용 부담에 '그림의 떡'이던 3세대 폐암 신약 투여 길 열려

민간 기업의 파격행보, 유한만의 독특한 지배구조가 한 몫

제약산업 육성위해 국산신약 적정가치 인정하는 풍토 절실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P)은 환자들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입니다.”

폐암 연구 권위자로서 ‘렉라자’의 1차 치료 단독요법 관련 글로벌 3상 임상 시험을 주도한 조병철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될 때까지 제한없이 약을 무상 공급하겠다는 유한양행(000100)의 결정에 대해 이 같이 평가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암환자들을 일선에서 만나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느끼지만 선뜻 나서는 회사가 거의 없다는 게 조 교수의 지적이다. EAP는 생명을 위협하지만 치료 방법이 없는 중증 질환 환자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시판 전 단계의 의약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통상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신약의 허가가 늦어질 때 임상시험에 참여해 치료 혜택을 본 환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운영돼 왔다. 다소 냉정하게 평가하면 그동안 상업화에 성공한 국산 신약 36개 중 환자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현장 수요가 높았던 사례 자체가 드물다 보니 EAP 운영을 고려할 필요조차 없었던 게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현실이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약이 있어도 한해 7000만 원이라는 가격이 부담돼 치료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는 소식에 가슴 아팠다”며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던 창업주의 정신을 기려 수익의 일정 부분을 환원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렉라자와 기전이 동일한 ‘타그리소’는 5년 전 1차 치료 허가를 받고도 여전히 비급여 상태다.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3세대 폐암 치료제의 건보적용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다. 이번 결정은 많은 암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뿐 아니라 코로나19를 겪으며 체감했듯 신약 개발 기술력을 확보해야 할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국내 기업이라도 민간 기업을 향해 이처럼 파격적인 결정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유한양행은 오너 일가가 있는 대부분의 전통 제약사들과 달리 공익법인인 유한재단이 최대주주다.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는 1971년 영면하며 전 재산을 공익재단인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에 기증했고 50년째 회사에서 매년 실시하는 현금 배당의 4분의 1가량이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을 통해 장학교육, 사회복지, 재해구호사업 등에 쓰이고 있다. 유한재단은 물론 창업주 일가도 회사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유한양행이었기에 이 같은 결정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국내 제약사 중 가장 먼저 연매출 1조 원 시대를 열며 탄탄한 경영 성과를 지속한 점도 한 몫했다고 보여진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들 캐시카우 마련에 급급한 바이오기업이었다면 신약후보물질을 글로벌 기업에 기술수출하고도 막대한 자금을 들여 글로벌 임상을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을까.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긴 쉽지 않아 보인다. 업계는 정부가 제약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도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이유로 약값을 깎는 데만 집중하면서 R&D 투자 의지를 꺾고 있다고 호소한다. 신약 개발을 독려하려면 적정한 약가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모든 기업이 유한양행과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다. 비단 폐암 뿐 아니라 혁신 신약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를 꽃피기 위한 마중물이 시급하다.

안경진 바이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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