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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풀의 미학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백자 청화 초문 각항아리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풀은 태초의 정취를 지니고 있다. 간결함과 순수함 그리고 겸손함은 풀이 지닌 고유의 특성이다. 우리 선조들은 풀이 지닌 꾸밈없고 소박한 모습을 좋아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풀 모양을 도안화한 초문이 도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전통 공예의 문양으로 즐겨 사용됐다. 초문에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숭상하고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내재돼 있다.

삶의 다양한 순간에서 우리는 풀과 마주한다. 풀밭에 앉거나 누워 풀의 촉감을 느끼고 코끝으로 전해지는 다채로운 풀 향기를 맡은 기억을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다. 풀은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이다. 풀을 통해 전달되는 신선한 감각은 우리를 고요하고 풍요로운 세계로 이끌어주며 우리의 경계를 풀어준다. 국내 유일의 도자기 분야 국가무형문화재인 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초문에는 이러한 풀의 고귀한 성질이 담겨 있다. 간결하면서도 꾸밈없고 거짓된 것이 없는 그의 초문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풀이 지닌 독특한 형질 중에 하나는 강한 생명력이다. 풀은 끊임없이 돋아나고 소생한다. 가녀린 형상으로 스스로를 지켜내는 풀의 생존 방식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초문은 풀의 솟아나는 속성과 끈기 그리고 가녀린 형상 속에 숨겨져 있는 강한 에너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의 초문에는 풀내음 가득한 싱그러움과 생동하는 기운이 담겨 있다. 순백의 자기 위에 청화로 그려진 그의 초문을 보고 있자면 긴 겨울을 이겨내고 들판에 솟아난 풀을 보는 듯 위로의 힘이 생성된다. 도자기 태토에 뿌리를 내리고 뜨거운 가마의 불을 견디며 백자 각항아리 표면에 싹을 틔운 김정옥 사기장의 초문은 우리에게 영원한 봄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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