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최고 기온이 37.5도에 육박했던 12일, 도쿄 속 작은 한국으로 불리는 신주쿠구 신오쿠보 지역은 한낮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돼즈니랜드’ ‘낭만핫도그’ ‘닭고기연구소’ 같은 한글 간판이 끝없이 이어지는 거리에서 행인들은 상점들에 진열된 한국 화장품, 잡화, 아이돌그룹 관련 상품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오쿠보에서 10년째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은영(52) 씨는 “코로나19 때 신오쿠보 가게 상당수가 문을 닫았는데 코로나19가 끝나자마자 예전 모습을 많이 되찾아 다행”이라며 “요즘은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뭐가 유행하는지를 일본 현지의 한국인들보다 더 잘 알 정도”라고 말했다.
되살아난 신오쿠보의 모습은 일본 젊은 세대의 일상에 한국 문화가 깊이 녹아들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4차 한류’가 불며 한국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얘기가 아니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단순히 대중문화를 즐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일본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문화에서 교육으로 보폭을 넓혀가는 한일 청년 교류가 양 국민 간 이해의 수준을 높이고 향후 한일 관계 개선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양호석 주일 한국대사관 수석교육관은 14일 서울경제신문에 “일본의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응시 수요가 높아져 2021년부터 시험장을 32개소에서 56개소로 늘렸다”며 “쉽게 응시하려면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봤는데 결과적으로 이 판단이 맞았다”고 말했다. 양 수석교육관의 얘기대로 토픽 응시자는 2017년 2만 명대로 올라선 후 2021년 처음으로 4만 명을 넘겼고 지난해에도 3만 9334명을 기록했다. 올해 역시 응시자가 4만 명 안팎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양 수석교육관은 “앞으로도 시험장을 늘려갈 계획”이라며 “예전에는 비즈니스를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취미 생활과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인기와 함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신오쿠보에서 본지와 만난 시노미야 유우카(페리스여대 4학년) 씨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한국 아이돌을 좋아해 나도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게 됐다”며 “자막이 없는 (방탄소년단) 영상들을 직접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모모카(칸다외대 2학년) 씨도 “중학생 때 K팝을 알게 되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후에 인스타그램으로 한국인 친구를 사귀었는데 (번역 없이) 직접 대화하고 싶어 한국어를 배웠다”고 전했다.
일본 MZ세대의 4차 한류는 일본 정부의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내각부가 올해 2월 실시한 ‘외교에 관한 조사’를 보면 한국을 친근하게 인식하는 18~29세 일본인의 비중은 64.7%로 201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전 세대 평균(45.9%)을 훨씬 상회한 수치다.
일본 학생들의 친밀도 상승은 한국 유학의 확대로 이어진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국내 대학의 일본인 유학생 수는 5733명으로 2003년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달 도쿄와 교토에서 온·오프라인 방식으로 개최된 한국유학박람회에는 현장에만 900여 명의 일본 학생과 보호자가 방문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용훈 교토교육원장은 “지난해 박람회 때는 한국 대학들이 현지에 못 와서 우리가 자료를 토대로 상담해줬는데 올해는 27개 대학 관계자들이 직접 왔다”며 “덕분에 더 진지한 유학 상담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온라인으로는 66개교가 참가했다.
일본인들의 관심이 언어 공부와 교육 교류로까지 확장되는 것은 한국에 대한 이해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원장은 “교육원에서 2021년부터 한일 대학생이 함께 숙박하면서 고대 신라·백제인들이 세운 교토의 유적을 공부하고 한일 문제에 대해 토론·발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홍보를 하지 않아도 2주 만에 30여 명의 정원이 찰 정도로 인기가 많고 참여 학생 중 매년 5~6명은 한국으로 유학을 간다. 심도 있는 교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양 수석교육관도 “매체를 통해서만 한국을 보게 되면 기성세대의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젊은 세대가 (교육 교류를 통해) 직접 한국을 느끼면 나름의 기준에 따라 비판적 수용도 하고 감동을 느끼는 부분도 있을 텐데, 이것들이 쌓이면 양국 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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