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 온 이야기, 레터로 전해드렸는데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NONHUMAN’를 주제로 한 주제전과 ‘기후 미식’을 내건 특별 기획 등 올해는 환경과 동식물에 관한 흥미로운 책과 관련 프로그램이 다수 소개됐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환경 관련 부스 가운데서도 에디터의 눈을 가장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던 존재는 바로 비건책방이었어요. 책방도 드물고 비건은 더 드문 이 세상에 정말로 비건 책방이 실존한단 말인가?!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 사장님께 대뜸 메시지를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에 실존하는 비건 책방으로 함께 가보시죠.
제주, 그리고 서울에도 있습니다 비.건.책.방
비건책방이 먼저 시작된 곳은 제주였다고 합니다. 독립영화도 만들고, 글도 쓰시는 김문경 대표님이 제주시 조천읍에 촬영하러 갔다가 동네에 반해 빈집을 빌려 이사하셨고, 2022년 2월 본인이 꿈꿔왔던 비건책방을 연 것. 그런데 작은 책방을, 그것도 제주도에서 운영하다보니 책을 배송 받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다고. 아무래도 서울에 베이스 캠프가 있는 것이 운영상 낫겠다는 판단으로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에 비건책방 서울점을 열게 됐습니다. 제주 비건책방 오픈 불과 반년 후인 지난해 8월에 말입니다.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비건책방을 챙기고 계시다고.
그저 책을 너무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책방을 열게 되셨다는 대표님. 그런데 하필 비건을 테마로 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20대 부터 소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 개인적인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완전한 비건이 됐죠. 그 개인적인 사건이란 게 남들이 들으면 '그게 비건 된 거랑 무슨 관련이 있어?' 싶은 일들인데,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컸던,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한 사건들이었어요. 그 중 하나는 16년 간 함께 지낸 반려견의 죽음이었고요."
비건책방 이름이 비건책방인 이유
튀는 걸 싫어했다는 대표님은 그렇게 비건이 되고나서 비건을 말하고 티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습니다. "용기를 내서 식당에서 계란을 빼 달라고 하고, 라떼를 주문할 때 비건 옵션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런 게 비건을 알리는 하나의 퍼포먼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방 이름도 돌려 말하지 않고 비건책방이라고 달았죠. 1년 365일 비건책방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거니까 나름 홍보 효과가 크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그래서 요즘에 비건을 제목에 떡하니 달아 놓은 책들을 보면 정말 기뻐요. 예를 들어 예전 같으면 채소 밥상이니 자연식이니 하고 나왔을 레시피 책들이 지금은 그냥 비건 레시피라는 이름으로 발간되거든요."
비건책방을 열면 전국의 비건들이 알음알음 찾아올 줄 알았지만 실제로 문을 열고 나니 동네 사람들이 비건책방의 주요한 손님이었다고 해요. 대표님은 "동네 분들이 와주셔서 더 좋은 것 같다"며 "편하게 들어오시라고 문도 늘 열어둔다"며 웃으셨어요. 또 "앞으로 10년은 비건책방을 유지해서 동네 사람들의 최애 서점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더 많은 사람, 더 다양한 이들과 만나기 위해 비건책방에서는 비건 영화 상영회나 북토크 같은 행사도 자주 엽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북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비건책방이 추천하는 책 3권은
자, 책방에 갔으니 당연히 책 추천을 넘어갈 수 없죠! 비건 책방 사장님이 고른 세 권의 책은 과연 어떤 책들일까요? 사장님은 "책이 워낙 다양해서..."라고 주저하시다가 어느 새 책 세 권을 쏙쏙 뽑아내셨어요. 참고로 비건책방에는 비건 관련 서적 뿐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환경, 비주류 등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구비돼 있어요. 사장님이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은 알맹상점 고금숙 대표님의 책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였습니다. 김 대표는 “나온 지(2019년)는 좀 된 책이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책이라 추천을 안할 수 없다”며 “특히 제로웨이스트, 친환경적인 삶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된 분들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37년생 홍태옥'이라는 책은 오직 비건 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책이다. 제주도에서 평생 살아 온 홍태옥 할머니가 처음으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야기와 그림을 엮었다. 마지막으로는 테이블팜 프로젝트의 OO집 매거진을 추천한다. 감자, 당근, 귤 같은 하나의 식재료를 주제로 발간하는 매거진이다. 표지가 알록달록하니 예쁘고 가벼워서 선물하겠다고 사가시는 분들이 꽤 많다”고 전했습니다.
끝으로 인터뷰 말미에 김 대표님은 이 시대의 책의 의미에 대해 해주신 얘기를 우리 용사님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책이나 영화라는 매체가 이제는 뭔가 앞서나가서 발 빠르게 뭔가를 선도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느리고 뒤쳐지는 것처럼 보여도 책과 영화엔 분명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이요." 부디 비건책방이 누군가가 무너지지 않게 기댈 수 있는 작지만 든든한 언덕이 되길 바라며, 오늘의 지구용 레터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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