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디저트브랜드 가운데 ‘모찌넛’이라는 게 있다. 식감이 찹쌀떡(모찌)처럼 쫄깃한 특징이 있는 도넛을 파는 곳인데 먹어보면 던킨도넛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이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자녀의 생일 파티나 이웃집에 식사 초대를 받을 때 사들고 가는 특별한 디저트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2020년 탄생한 후 미국에 100여 곳의 체인점이 있다고 하니 반응이 꽤 괜찮은 듯하다.
한국이었으면 어땠을까. 몇 년 전 언론지상에도 오르내렸던 ‘미투(Me too) 창업’이 떠올랐다. 2000년 전후 쪼끼쪼끼 브랜드가 성공하자 쭈끼쭈끼·블랙쪼끼 등 콘셉트와 특징을 따라한 유사 브랜드가 생겨났고 2010년대는 봉구비어의 인기를 타고 용구비어·봉쥬비어 등 비슷한 스몰비어 가게들이 우후죽순 뒤따랐다. 대만 카스테라 브랜드의 폭증과 빠른 쇠퇴는 영화 기생충의 설정에 활용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 외에도 계란샌드위치·흑당버블티 등도 원조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특징 없는 베끼기 브랜드가 범람했다.
이 같은 미투 창업은 대부분 경쟁을 통해 시장을 키우기보다 서로의 수요를 갉아먹으며 공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혁신가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성과를 내더라도 그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 구조다. 이런 문화라면 혁신을 하기보다 베끼는 것이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더 나은 선택이 된다. 그렇다면 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가.
미국에서는 사업에 관한 한 베끼기보다 차별화를 하겠다는 접근이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단지 모찌넛과 같은 외식 사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마트들도 그렇다. 월마트와 타깃이 미국 내 가장 대중적인 대형마트인데 상품 구성과 가격대가 다르다. 월마트는 식품 구성이 훨씬 다양하고 타깃은 의류나 공산품에 강점이 있다. 가격대는 타깃이 더 높아 중산층이 핵심 소비자층이다. 이외에 홀푸드라는 마트는 유기농 제품 위주로 부유층을 공략하고 알디라는 마트는 초저가 제품이 많다. 한국에서는 이마트나 롯데마트 한곳에서 쇼핑을 끝낼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품목별로 여러 군데에서 장을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곳만 가면 품목이 없을 수도, 가격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각 마트 브랜드마다 저마다의 수요를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아마도 유통업 진출을 고려하는 다음 주자는 또 다른 특징과 차별화 지점을 고민할 것이다.
미국 제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테슬라가 전기차의 가능성을 증명하자 리비안 등 후발 주자들이 생겼다. 다만 이들 기업은 테슬라가 만든 세단이 아니라 픽업트럭과 수송용 대형트럭 등 다른 분야로 뛰어들었다. 산업 전반에 걸쳐 창업가들이 ‘나도’가 아닌 ‘나는’에 집중해 사업을 하는 문화가 엿보인다.
이는 어째서 미국에서 혁신 기업이 계속 탄생하는지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 뉴욕에서 만난 한 대형 펀드의 최고경영자(CEO)는 “기준금리가 올라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더라도 미국의 혁신은 계속될 수 있다”며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 미국 경제의 성공 공식”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올해 조사한 세계 50대 혁신 기업에서 절반인 25곳이 미국 기업이다. 10년 전 23곳에서 더 늘었다. 반면 한국은 10년 전 4곳이던 혁신 기업 수가 올해는 단 1곳으로 줄었다.
도전하라는 구호만 넘치고 정작 인기 상품을 베끼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문화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할 이유가 없다. 반면 혁신가들이 만든 시장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얹는 것이 기본 전제인 문화라면 그 나라 경제는 연쇄적인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일본의 음악을 표절하고 미국의 스타일을 베끼던 시절에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은 해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어느 나라와도 다른 스타일을 입히고 난 후 K팝은 기존에 없던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유통, 심지어 동네 외식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혁신 경제를 위한 씨앗은 ‘베끼지 않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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