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리 속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처음 찾아간 곳은 민간인들을 대거 공격한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자행 현장이었다. 전쟁에 의한 인권유린의 참상을 직접 확인하고 평화 구축을 위한 의지를 다지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우크라이나 도착 후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시의 민간인 학살 현장 및 이르핀시의 민간인 거주 지역 폭격 현장을 둘러봤다고 김은혜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은 전했다. 대통령의 부차 방문은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기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행위를 규탄하는 동시에 잔혹하게 민간인을 학살한 전쟁범죄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차시는 지난해 2월 22일부터 3월 31일까지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역이다. 러시아군은 부차시에서 잔혹하게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민간인 학살은 부차시가 해방된 후 밝혀졌다. 언론인과 우크라이나 군이 도시에 들어갔을 때 민간인 대량 학살의 증거를 발견했다. 일부 시체는 길거리에 누워 있었고 일부는 손이 등 뒤로 묶여 있는 상태로 발견되는 등 현장은 참혹했다.
우크라이나는 키이우 부차 지역의 성안드리우스키 성당 근처에 있던 집단 무덤에서 시신을 발굴해 신원을 확인하고 사망 경위를 규명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최소 67명의 희생자가 발견됐으며 대부분은 40세에서 60세 사이 민간인으로 확인됐다. 국제사회는 이 사건을 ‘부차 학살’이라고 지칭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령에 따라 부차시는 ‘우크라이나 영웅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윤 대통령이 부차시에 이어 방문한 이르핀은 러시아 군이 지난해 키이우로 진격하기 위해 공세를 퍼부은 지역이다. 지난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서쪽에서 포위하기 위해 이르핀·부차·호스토멜 장악을 시도했다. 특히 러시아군이 이르핀 등의 민간인 거주 지역을 겨냥해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현지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줘 굴복시키기 위한 비윤리적 전술의 일환으로 평가됐는데 그 결과 러시아는 한층 더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했으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되레 결집시키게 돼 결과적으로 러시아군의 자충수가 됐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으로 인도적 구호품으로 제한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원에 변화가 있을지도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올 4월 외신 인터뷰에서 민간인 대규모 공격, 대량 학살을 전제로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당시 대통령실은 대량 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를 가정한 원론적 발언이라며 확대해석에 선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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