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부터 시작된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와 실종자가 16일 오후 6시 현재 각각 37명, 9명으로 집계됐다.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가 12년 만에 가장 컸다. 또 산사태와 농경지 유실, 이재민 발생, 열차 운행 중단 등의 피해도 막대하다. 이번 ‘극한 호우’는 강수량이 매우 짧은 기간에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물폭탄 참사를 키웠다. 하지만 예고된 재난이었다는 점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 참사는 인재(人災)였다. 금강홍수통제소가 청주시에 미호강 인근 도로 통제를 요구했는데도 행정 당국은 4시간이 지나도록 통행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사전 제방 관리도 허술했다. 지하 차도와 붕괴된 미호강 제방을 각각 충북도와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관리하면서 체계적인 재난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경북도는 산사태로 예천군 등에서 이미 대규모 사망·실종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대피 명령을 내렸다. 침수가 우려되는 서울의 반지하 주택 가운데 서울시가 매입한 주택은 목표치의 2.8%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홍수가 난 강남역·도림천·광화문 일대 도심도 빗물 터널은 4년 뒤에나 완공된다.
물폭탄 피해가 커진 데는 중앙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종합적이고 효율적인 수해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호우 피해와 관련해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동안 재해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정비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 의원들도 지난해 물막이판 설치, 부실 시공 방지 등을 위한 ‘수해피해방지법’을 쏟아냈지만 관련 법안 대다수는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정치권이 재해 직후에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후속 대책 챙기기에는 소극적이었던 셈이다.
기후변화로 앞으로 한반도에는 기상이변에 따른 홍수·가뭄·태풍 위기 등이 잦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취약 지역을 점검하고 철저한 사전 대비와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체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특히 환경부와 행정안전부, 지자체 등으로 나뉜 물 관리 행정과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부터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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