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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회색 머리’의 부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용병 ‘바그너그룹’을 이끌 새 수장에 러시아군 대령 출신인 안드레이 트로셰프를 지목했다. 한때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물러난 후 닷새 만의 일이다. 이날 푸틴은 바그너그룹 고위급 수십 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세도이’라는 호출부호를 지닌 직속 지휘관 아래에서 전투를 지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푸틴이 뒤이어 가진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 말을 하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설명을 굳이 덧붙였다는 것이다. 이젠 러시아도 푸틴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시대는 지난 듯하다. 프리고진의 반란으로 푸틴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다.

세도이는 ‘회색 머리카락’이라는 뜻으로 트로셰프의 외모에 착안한 별칭이다. 1962년 구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트로셰프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자주포포대를 지휘해 적성훈장을 받았고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연방군에서 복무하다가 2012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바그너그룹에는 2014년 창설 멤버로 참여해 전무이사와 참모장을 거쳤고 시리아 내전 때 현지에서 작전을 지휘하며 시리아 정권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푸틴과는 2016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행사에서 찍은 기념 사진에서 오른쪽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오랜 기간 깊은 신뢰를 받아 왔음을 짐작케 한다.



푸틴이 바그너그룹을 유지하는 것은 정규군에 비해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국제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푸틴은 바그너그룹을 자신의 ‘사병(私兵)’처럼 부리면서 국내 권력을 유지하고 해외에서는 러시아에 우호적인 독재자를 보호하는 일에 나섰다. 그러나 바그너그룹의 역할이 커질수록 프리고진에 대한 푸틴의 의심도 커졌고 이는 결국 반란으로 귀결됐다. 푸틴에게 바그너그룹이 ‘용병의 저주’였던 셈이다. 용병을 악용해 권력을 한손에 움켜쥐려는 푸틴의 통치 철학이 바뀌지 않는 한 유사한 일은 반복될 수 있다. ‘회색 머리’도 ‘푸틴 요리사’의 토사구팽을 똑똑히 지켜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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