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사교육과 기득권 노조의 불법행위에 칼을 들이댔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권 카르텔 타파가 공정 사회로 가는 길이라는 찬성론과 반대 세력을 카르텔 용어로 몰아세움으로써 사정 정국을 예고한 것이라는 반대론이 맞서고 있다.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목을 받은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은 1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대 정부의 개혁이 실패한 것은 기득권 카르텔 때문”이라며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구조 개혁에 대한 언급이 없이 카르텔 혁파를 외치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현 정부의 국정 운영은 구체적 설계도 없이 기둥부터 세우는 꼴”이라며 “야당도 동의할 수 있는 큰 틀의 어젠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2개월이 넘었다.
△국정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좀 이른 측면이 있다. 지난해에는 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예산으로 국정을 끌고나가야 했던 만큼 실질적인 국정 운영은 올해부터라고 봐야 하는데 겨우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지난 1년은 코로나19의 후유증을 극복하느라 경제 운용이 어려웠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국정 운영 평가에서 가장 좋은 기준이 양질의 일자리 증가 여부인데 그런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올 5월 기준으로 증가한 일자리의 99%가 여성 일자리였다. 연령대별로 보면 20~40대 고용은 줄었고 60대 고용만 늘었다. 또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숙박 서비스 및 보건 복지 분야 일자리는 증가했다. 숙박 서비스 일자리는 엔데믹, 보건 복지 일자리는 정부 지출 증가의 영향을 받아 늘어난 것이다. 질 좋은 일자리가 증가한 것은 아니어서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비전에 대해 평가한다면.
△이권 카르텔 타파, 규제 해소와 같은 단편적인 것들은 눈에 띄는데 큰 그림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큰 그림이 없으니 우선순위도 안 보인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구조의 한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집을 짓겠다는 설계도 없이 기둥부터 세우는 모양새다. 카르텔 철폐 등 단편적인 메시지만 있으니 국민도 야당도 설득하기 힘들다.
-최근 김 원장께서 페이스북을 통해 수능 킬러 문항의 문제점을 지적해 화제가 됐다.
△이렇게 화제가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공부 모임에서 한 변호사가 수능 국어 영역 문항을 소개하면서 ‘이것 참 어렵다’고 해 알게 됐다. ‘자기자본비율’에 따른 위험 가중치를 묻는 문제였는데 고등학생이 풀기에는 너무 난해했다. 더구나 한 문제당 주어진 시간이 대략 2분밖에 안 된다. 이런 킬러 문항은 교육 기회의 균등을 깨는 것이고 기득권 카르텔 형성의 원인이 된다. 여유 있는 계층만 누릴 수 있는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돈벌이가 되면 잠재적 카르텔이 만들어진다. 교육 기회의 격차가 벌어지면 사회계층 갈등 심화 등 수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저출산 문제와도 직결된다. 교육은 기회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만큼 평등의 가치가 구현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최근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권 카르텔’이라는 단어보다 ‘기득권 카르텔’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사실 현 정부가 내세운 교육·노동·연금 개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정부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들이다. 개혁이 실패한 것은 기득권 카르텔 때문이다. 기존 질서에서 힘을 가진 기득권층이 저항하기 때문에 항상 벽에 부딪힌다. 그런데 이 정부는 카르텔을 때려잡는다면서 구조 개혁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세무조사로 강남 학원을 때려잡는 것은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정책에 불과하다.
-구조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가.
△교육 개혁을 예로 들면 킬러 문항 배제, EBS 연계 강화 등 입시 대책과 함께 지방대학 구조 조정, 대학 운영의 자율성 확보, 공교육 정상화 등의 구체적 대책이 동반돼야 한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모으는 미국의 대학은 학생을 각기 다른 기준으로 자유롭게 뽑는다.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 만점자가 수두룩하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15년이나 동결됐다. 교육부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지원하는 자금 없이는 대학 운영을 하기 어렵게 되니 교육부 관료들이 대학을 쥐고 흔들게 된다. 카르텔만 문제 삼는다고 본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 개혁도 마찬가지다. 기본 방향은 노동 유연화를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기존 노조만을 상대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조직화된 노조는 10%에 불과하다. 우선 나머지 90%의 근로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플랫폼 내지 구조를 만들어야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구조 개혁에 대해 야당의 협조를 얻을 수 있을까.
△야당이 국정에 순순히 협조해주는 경우는 없다. 여당과 야당의 이념 기반부터 다르다. 야당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여의도 정치는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블랙홀이 돼버렸다. 이를 타개하려면 정치적 타협이 필수적인데 타협은 결국 집권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가능하다. 북유럽 국가들이 좌우 대립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교육과 보육의 확대라는 공통분모를 토대로 대화하고 타협하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도 가능했다.
-어떤 어젠다가 개혁 과제를 포괄하면서 야당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까.
△합의를 형성할 수 있는 어젠다를 설정하고 국정의 큰 그림을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 저는 ‘인력 강국’을 제시하고 싶다. 인력 강국은 자유를 중시하는 여당이든 평등에 우선순위를 두는 야당이든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어젠다다. 이 같은 틀 안에서 공교육 정상화, 대학 구조 개혁, 보육 강화, 저출산 해소, 노동 개혁 등을 추진해나가면 야당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 2021년 기준 정부 지출의 48.3%가 보건 복지 고용 및 교육 예산이다. 이 막대한 예산을 인력 강국이라는 어젠다에 맞춰 조정하고 배분하자고 제안하면 여야가 충분히 협조할 수 있다. 정의로운 사회란 좋은 일자리를 얻고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야 하고, 임금 비중을 키우기 위해서는 인력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그런 과제들을 정치적으로 현실화해 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름을 따 2006년 제시한 해밀턴 프로젝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해밀턴 프로젝트는 폭넓은 계층을 아우르는 경제성장을 위해 양질의 공교육 제공, 빈곤에 대한 적절한 보호 장치, 재정 규율의 강화, 성장 촉진 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강조한다.) 이 프로젝트는 포용 성장 이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핵심은 인력 양성이다. 현 정부도 인력 양성이라는 틀 안에서 교육·노동 등 각종 개혁 과제를 제시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1.6%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는데.
△1.4%도 다소 낙관적이라고 본다. 저와 국가미래연구원은 1.3%가 현실적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경제 체질 개선 방안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려면 부실 기업 정리와 영세 자영업자 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기업이 상장사의 35%에 달한다. 이런 기업을 계속 안고 가면 금융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이 초래된다. 자금이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 흘러들어 가지 못해 우량 기업이나 유망 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산업 생태계가 망가지게 된다. 또 다중 채무 자영업자들의 부채 규모가 104조 원에 달하고 올해 말까지 이들의 연체율이 18.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실을 해결하는 것은 가계 부채 부실 방지와도 직결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면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미국 경제가 강력한 긴축에도 위축 없이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노랜딩(No Landing)’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미국이 두 차례 이상 기준금리를 더 인상할 것으로 본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가계 부채, 잠재 부실 문제 등으로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 금리 차가 확대되면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에 충격이 올 수도 있다. 외화 유출로 원화 가치가 더 하락하면 물가 관리도 힘들어진다. 한국은행으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다. 그렇다고 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기도 어렵다. 결국 구조 조정 등을 통한 경제 체질 개선, 규제 완화 등으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규제 완화는 돈이 들지 않는 경기 부양책인 만큼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He is…
1947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강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제통상학회와 국제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으나 결별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를 설계했으며 2017년 5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다. 현재 국가미래연구원을 이끌며 경제정책에 대한 다양한 제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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