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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로 물·식사 나르며 밤낮없이 작업…"또 비온다니 걱정"

[예천 산사태 현장 가보니]

물길 달라져 하천지도도 소용없어

지자체 인력·봉사자 등 8000여명

복구작업 덕에 상황 조금씩 나아져

완전 복구에는 7년 정도 소요 예상

농사 주업인 주민들 생계걱정 한숨

수색하던 해병대원도 급류에 실종

19일 경북 예천군 효자면 일대에서 복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독자 제공




“100세 노인도 생전 처음 보는 물난리라고 하대예. 치운다고 사흘 밤낮을 꼴딱 새우다시피 했어예.”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곳곳에서는 산사태 피해 복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전날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맑게 갠 하늘 아래 주민, 지자체 인력, 군경이 모여 구슬땀을 흘리며 복구 작업에 열중이었다. 최통일(59) 예천군 효자면 사곡리 이장은 “어마어마한 물이 쏟아져서 물길 자체가 달라져 기존의 하천 지도가 소용없는 수준”이라며 “급한 대로 할 수 있는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주민도 “폭우 직후에는 도로가 유실돼 지게에 직접 물과 식사를 실어 날랐다”며 “밤낮없이 복구 작업을 벌인 덕에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명봉리에서 산사태로 밀려온 토사를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예천=이승령 기자


폭우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산에서 밀려 내려온 토사와 무너진 민가의 잔해만이 남아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폭우를 피해 대피한 주민은 448명에 달한다. 이들은 현재 예천군문화체육센터, 마을 경로당 등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머무르고 있다. 피해가 심했던 효자면에서는 약 100여 명의 주민들이 대피 중이다. 이들 역시 마을 경로당과 면사무소, 교회와 복지센터 등에 머무르고 있다.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명봉리 내현 마을 입구에 민가가 유실된 채 방치돼 있다. 예천=이승령 기자


효자면 백석리 경로당으로 몸을 피한 주민 이 모(59) 씨는 “토사물이 집 뒷마당까지 내려 앉아 겨우 화를 피했다”며 “집에 102세 어르신이 있는데 주말에 다시 비가 온다고 해서 어디로 갈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명봉리 내현 주민 김기주(54) 씨도 “고립돼 있다가 비가 잠시 소강된 상태에서 예초기를 이용해 겨우 빠져나와 모텔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며 “물길 돌리는 공사가 빨리 진행돼 집에 들르고 싶다”고 말했다.

예천군에 따르면 도로 유실 27개소, 소하천 및 지방 하천 유실 20건, 상하수도 시설 파손 37개소, 주택 파손 67동과 함께 농경지·축사·가축 피해도 다수 발생했다. 경상북도 전체로 보면 도로·교량, 하천, 상하수도 등 총 510개소가 피해를 입었는데 이 중에서 31.4%에 대한 응급 복구를 마쳤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복구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완전한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명봉리의 한 주민은 “완전히 복구되는 데 7년 정도 소요된다고 들었다”며 “이 지역은 복분자·호두 농사로 먹고 사는데 당장 생계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산사태로 전기와 물이 끊긴 가구가 다수지만 쓰러진 전봇대를 다시 세우는 데도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날 현장을 찾은 임휘승 경상북도 자치행정국장은 “오늘 중으로 도로 응급 복구 대부분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라며 “160여 대의 중장비를 투입하고 타 시도에서도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멈췄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장맛비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가 21일 제주를 시작으로 다시 장마전선이 전국에 걸쳐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잠시 물러난 비 소식에 2~3일의 골든타임이 확보된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추가 피해를 막고 수재민들을 하루 빨리 일상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피해 복구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조용찬 한국지질자원연구소 연구원은 “폭우가 짧은 주기로 반복되면 토층에 물을 머금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고 물을 다 배출하거나 증발하지 못한 상태에서 배수가 되지 않는다”면서 “큰 비가 오고 2~3일 소강상태가 지나 다시 큰 비가 올 때 산사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19일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육군이 산사태로 유실된 도로 복구작업을 펼치고 있다. 예천=정유민 기자


한편 비가 예보된 주말이 오기 전 도로·교량에 대한 응급 복구와 실종자 수색을 위해 지자체 인력뿐만 아니라 군, 경, 소방, 민간 봉사자 등이 대규모로 투입됐다. 예천군에 따르면 15일부터 이날까지 누적 인원 8075명이 투입돼 수색·구조·복구 작업을 벌였다. 현재 육군으로부터 지역을 인계받은 해병대에서 이날 오전 9시 10분께 실종자를 수색하다 한 대원이 급류에 떠내려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장 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벌이다 오전 10시 35분께 개포면 동송리 경진교 부근에서 소방 당국이 띄운 드론에 신원 미상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실종된 해병대 대원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해당 시신은 15일 용문면 제곡리 한천에서 대피 도중 급류에 휩쓸린 70대 실종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응급 복구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변화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폭우로 매년 재해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교철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안전 취약 지역, 특히 기후변화로 재난이 반복되는 지역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기존에는 건물이나 시설을 설비할 때 그 지역만 봤다면 재난 발생 주기와 강도가 변화했기 때문에 인근 산 등 자연 지형들도 폭넓게 고려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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