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에서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진 해병대원은 한평생 국가에 헌신한 소방관의 외동아들이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친은 ‘물 조심하라’고 당부한 2분간의 통화가 ‘마지막 대화’가 됐다며 절규했다.
20일 유가족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예천 수해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내성천 급류에 휩쓸려 숨진 해병대 A(20)일병은 전북도 소방본부에서 27년을 몸담은 소방대원의 외아들이었다.
고향이 전북 남원인 A 일병은 전주에서 대학에 다녔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지난 5월 해병대에 입대했다.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인 A 일병은 전날 오전 9시 3분께 예천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전우들과 수해 실종자 수색 도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고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1996년 임용된 A 일병의 부친(57)은 아내와의 결혼 생활 10년 차에 어렵게 외아들을 품에 안았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남원 지역 안전센터에서 현직 소방위로서 여전히 사명감이 투철한 소방관으로 활약하며 주위에서 높이 평가한다고 소방당국은 전했다.
그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아내와 전북 남원에서 경북 예천까지 245㎞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들이 실종된 지점에서 부친은 해병대 중대장을 향해 "구명조끼 입혔어요? 입혔냐고. 왜 안 입혔냐고요. 왜. 그게 그렇게 비싸요"라고 반문했다가 "지금 세상에 물살이 이렇게 센 데,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죽겠네 정말. 기본도 안 지키니까"라며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못 했다.
곁에 있던 아내는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외동아들이에요. 외동. 혼자 있어요. 혼자. 어떻게 살아. 어디예요? 못 찾았어요?"라며 울부짖었다.
실종 14시간여 만인 전날 오후 11시 10분께 내성천 고평교 하류 400m 지점에서 아들이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부와 친인척은 "구명조끼만 입혔어도…"라며 억장이 무너졌다.
20여분 뒤 부부를 태우기 위해 이들이 대기하던 숙소 앞 현관에 119구급차가 도착했으나 부부는 아들에게로 쉽게 향하지 못했다. 일부 친척은 현관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보였다.
A 일병의 부친은 아들과 지난 18일 마지막 2분의 전화 통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내가 걱정돼서 저녁에 전화했는데 어제. 2분 딱 통화를 했어. 물 조심하라고. 아이고 나 못 살것네." 딱 2분이었다는 그 통화가 아빠와 아들의 마지막 대화가 돼버렸다.
한편 이날 새벽 국방부 출입기자단 공지를 통해 A 일병의 사망 사실을 확인한 국방부는 “해병대 안전단은 호우피해 복구작전에 투입된 부대의 안전 분야에 대해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보완 중에 있다”고 발표할 뿐 유감 표명이나 조의는 표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해병대사령부가 출입기자단 문자메시지를 통해 “호우피해 복구작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해병대원의 명복을 빈다"며 “유족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앞서 지난 18일 예천 지역 수해 현장에 투입된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 일병은 전날 오전 9시 10분께 실종자 수색 도중 급류에 휩쓸리며 실종됐다. 해병대 측은 당시 수색에 나선 대원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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