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생산 공장을 둔 르노코리아에는 ‘오로라3 프로젝트’라는 게 있다. 오로라는 라틴어로 ‘여명’을 뜻한다. 오로라3는 2027년까지 부산에서 첫 전용 전기차를 개발·생산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업과 완성차 업체를 보유한 나라다. 배터리·전기차 공장을 지으면 최대 35%의 세액공제 혜택도 준다. 전기차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자동차 선진국들의 눈에는 천혜의 전기차 생산 조건을 가진 곳이다.
하지만 오로라3는 묘한 경계선에 서 있다. 겉으로 드러난 조건은 더할 나위 없는데 추진 과정에서 넘어야 할 벽이 만만치 않아서다. 바로 ‘배터리 벽’이다.
전기차는 개발부터 양산까지 통상 4~5년의 시간이 걸린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조달이 지금쯤은 정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배터리 3사들이 폭증하는 글로벌 전기차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해외에 생산 공장을 짓다 보니 국내 생산 능력이 부족해서다. 지난해 말 국내 배터리 생산 규모는 39기가와트시(GWh)다. 아무리 쥐어 짜내도 전기차용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배터리 물량은 10GWh 정도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이 정도로는 전기차 10만 대가량을 생산할 수 있다. 르노코리아의 연간 전기차 생산 목표인 20만 대에 한참 못 미친다. 배터리 강국인 한국에 전기차 공장을 지으려는데 배터리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사들도 할 말은 있다. 국내 생산 능력을 늘릴 이유와 인센티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투자 및 비용으로 누적된 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환급받거나 제3의 기업에 양도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영업이익을 내야만 세액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2021년에서야 흑자를 냈고 SK온은 이제서야 흑자 달성 얘기가 나온다.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조 원의 자금이 드는 배터리사 입장에서 국내 인센티브는 ‘그림의 떡’이다.
오로라3는 한 기업만의 전기차 프로젝트가 아니다. 전기차는 물론 배터리의 국내 생산을 앞으로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보여줄 바로미터다.
한국이 미래 전기차 생산 기지가 되려면 현대차·기아와 더불어 중견 완성차 업체의 빠른 전동화 전환이 필수다. 그러려면 국내에도 배터리 산업 생태계가 조속히 구축돼야 한다.
답은 나와 있다. 우리도 미국 IRA처럼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해도 세액공제분만큼 현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획기적인 투자 인센티브를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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