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뜨거워서 스포츠나 청춘과 정말 잘 맞잖아요. 하지만 견디기 힘들어서 다른 곳으로 지나가고 싶기도 해요. 그 모든 게 지금 겪고 있는 ‘다른 여름’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항상 여름은 다를 줄 알았는데 거기엔 숨 막힘과 간절히 지나가고 싶은 마음만이 있다는 거죠. ”
20일 서울 종로구 CJ아지트 대학로에서 만난 극작가이자 연출가 최치언(53)은 연극 ‘다른 여름’의 제목에 대해 이렇게 풀이했다. 창작집단 상상두목을 이끄는 그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연극 ‘다른 여름’은 고등학교 핸드볼부를 배경으로 체육관 방화사건의 실체를 추리해가는 작품이다. 올해 CJ문화재단 창작단체 지원사업 스테이지업 공모에 선정돼 오는 27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스테이지업은 실험적인 극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창작자·창작단체 대상으로 제작지원금과 공연장, 작품 홍보·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CJ문화재단 문화공헌사업의 일환이다.
연극은 2021년 서울연극제를 통해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관객을 한 차례 만났다. 당시 희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2년 만에 서는 소극장 CJ아지트 대학로에서는 규모는 줄었지만 단단한 무대로 돌아오게 됐다. 15명 남짓이던 배우들은 심판을 포함해 5명으로 줄어 역동성을 극대화했다. 최치언은 “지금보다 큰 사이즈의 극장에서 작업하면서 역동성이 잘 구현됐는지 아쉬움이 있었다”면서 “이번에는 배우들이 달리거나 땀 흘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소극장의 장점을 느낄 수 있다. 작품과 극장이 잘 만나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변형 무대인 CJ대학로 아지트의 특성을 살려 4면으로 구성된 무대가 관객의 몰입감을 높인다. 철봉과 핸드볼 골대를 통해 핸드볼 경기의 모습을 구현했다. 무대의 한편에는 드럼이 추가되며 라이브 음악을 선보인다. 최치언은 “배우들만 움직일 때는 드라마가 잘 보이지 않는데 드럼이 들어 오니 이야기를 배가시키더라”라면서 “드럼을 통해 어렵게 느껴졌던 장면이 직관적으로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연극의 구상에는 학창시절 9년 간 핸드볼 선수로 활동했던 최치언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핸드볼은 모든 실내 구기 종목 중 가장 넓은 공간을 사용한다. 그만큼 선수에게 요구되는 체력의 한계도 높다. 그는 “텅 빈 교정이나 한여름의 열기 같이 운동을 한 사람만이 느끼는 이미지가 있다”면서 “코트 위에서의 불안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호흡으로 세상을 볼 때의 어지러움이 작품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좌절과 트라우마를 겪는다. 극 중 고등학교 선수도 중요한 경기에서 ‘7m 패널티 드로우’ 규칙으로 실축해 트라우마를 얻는다. 그러나 극은 트라우마가 자신을 강하게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최치언은 “스포츠에서 한 번의 실패를 겪고 주저앉은 채로 끝나면 그냥 트라우마로 끝나는 것이지만, 극복하려 할 때는 트라우마가 자신을 다시 세운다”면서 “성장기 청소년의 이야기지만 청년들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극의 대사를 통해서는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최치언의 언어적 감각도 맛볼 수 있다. 그는 또 다른 대표작인 블랙 코미디 연극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을 통해 철학적인 작품 세계를 보인 바 있다. 이번에는 분열을 겪는 어린 선수를 통해 시적이고 상징적인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연극 ‘다른 여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온라인 미디어 예술활동 사업에 선정돼 실제 체육관 촬영에도 나선다. 연극은 8월 27일까지.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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