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22분마다 방 안에서 이상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면 그 정체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 혼령이 실존하는 것일까, 두려움으로 인한 인간의 환청에 불과할까.
이달 19일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에서 개막한 연극 ‘2시 22분’은 영국을 무대로 한 젊은 부부 ‘샘’과 ‘제니’의 집을 그린다. 샘의 오랜 친구 ‘로렌’은 그의 연인 ‘벤’과 함께 초대받아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야기의 화제는 곧 새벽마다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로 흘러간다. 제니는 매일 같은 시간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며 집 안에 혼령이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성적인 샘은 이 세상에 혼령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제니의 말을 부인한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제니는 모두 2시 22분까지 이 자리를 떠나지 말고 목격자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내민다.
이번 작품은 ‘레드’ ‘대학살의 신’ 등을 제작한 신시컴퍼니가 5년 만에 선보이는 라이선스 연극이다. 영국 웨스트 엔드에서 초연돼 지난해 왓츠온스테이지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작 연극, 연극 부문 최우수 여우주연상·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국의 토니상으로 불리는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에서는 최우수 신작 연극, 여우주연상 후보 등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배우 아이비·박지연·최영준·김지철 등이 출연해 형이상학과 과학을 둘러싼 철학적인 대립을 이끌어간다. 뮤지컬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아이비의 첫 연극 출연작이기도 하다. 25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아이비는 “예전부터 연극을 해보고 싶었는데 섭외가 잘 들어오지 않더라. 종종 들어오는 대본도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 없었다”면서 “(제니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험을 설득해가면서 풀어내야 하는 캐릭터라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극 중에서 실제로 혼령이 존재하는지는 어느 순간부터 중요하지 않다. “믿음은 쌍방”이라는 제니의 대사처럼 갈등을 초래하는 건 소통하지 않으려는 태도 자체다. 영화계에서 사실적인 번역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황석희 번역가가 참여해 인물들 간 어긋나는 소통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낯선 영국 지명이 몇 차례 등장하고, 전반적으로 종교에 대한 서구적 정서가 엿보이지만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김태훈 연출은 “언어가 달라도 두려움을 느끼고 사랑하는 감정에 대해 공감하는 점은 똑같다고 생각한다“면서 “핵심 정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인물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때 (배경이) 영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난민이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는 계급 사회의 모순을 고발한다.
기묘한 이야기에 걸맞은 스릴러적 장치가 산재하다. 이은결 일루셔니스트의 특수 효과로 초자연적인 무대에 대한 몰입감도 더해졌다. 비명을 지르는 듯한 여우 울음소리에 너무 놀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무대의 한 편에 자리한 시계를 통해 2시 22분이 다가올수록 관객들의 궁금증이 높아진다. 제니의 믿음처럼 이 시간이 되면 충격적인 일이 벌어질 것인가. 예상치 못한 결말은 극의 시작부터 돌이켜 생각하게 만든다. 9월 2일까지. 130분.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